요즘 스타트업 대표들 사이에서 한 번씩 회자되는 인터뷰가 있다. 젠슨 황이 지금도 전 직원의 업무 보고를 직접 받는다는 이야기다. 엔비디아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회사를 이끄는 사람이 그렇게 한다니까 다들 반응이 비슷했다. 대표들 모인 단체 채팅방마다 이 인터뷰 링크가 며칠째 돌아다닌다는 얘기도 들린다. 똑같은 얘기를 무명의 중소기업 대표가 했다면 그냥 한 줄 뉴스로 지나갔을 텐데, 젠슨 황이라는 이름값이 무게를 다르게 만들었다.
그동안 다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살아온 대표들의 봉인이 이번에 풀린 거다. 솔직히 말하면 그 마음의 본질은 신뢰가 아니라 불안이었던 경우가 많다. 막상 맡겨놓고도 못 믿겨서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싶은 게 진짜 속내였다. 그런데 좋은 리더는 마이크로매니징보다 신뢰와 위임을 한다는 말이 워낙 정설처럼 퍼져 있다 보니, 좋은 경영자로 보이고 싶고 비난받기는 싫어서 일단 참는 쪽을 택했다. 들여다보고 싶을 때마다 몰래 슬쩍 확인하고 넘어가는 식으로 버틴 대표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젠슨 황도 저렇게 한다는데"라는 한 마디로 합리화가 가능해졌다. 굳이 몰래 할 필요도 없어진 셈이다. 이참에 나도 다 들여다봐야겠다고 마음먹은 대표가 한둘이 아닐 거다. 당장 다음 주 회의부터 보고 방식을 바꿔보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위임에는 자격이 필요하다
위임과 신뢰가 중요하다는 말,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위임이라는 단어를 너무 낭만적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위임은 권한만 넘기는 게 아니라 그 권한을 책임감 있게 써낼 능력까지 같이 넘기는 일이다. 받는 사람이 적어도 그 일을 스스로 판단하고 처리할 전문성과 경험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초기 스타트업엔 그런 사람이 별로 없다. 주니어가 대부분이고 시니어는 아직 못 뽑았거나 못 들였다. 이 상황에서 주니어한테까지 권한을 던져버리면 그건 위임이 아니라 방치에 가깝다. 일이 잘못됐을 때 결국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 책임을 질 준비가 안 된 사람한테 권한만 쥐여준 셈이니까.
식당으로 치면, 막 오픈한 1호점 사장님이 주방도 보고 서빙도 하고 카운터까지 보는 거랑 비슷하다. 직원이 아직 레시피도 익숙하지 않고 단골 응대 경험도 없는데 오늘부터 알아서 해보라고 할 수는 없다. 사람만 부족한 게 아니라 시스템도 없다. 시스템이나 프로세스가 곧 관료주의는 아니다. 규칙 없음을 표방했던 넷플릭스조차 비용 처리나 내부 승인 절차 같은 최소한의 프로세스는 갖고 있었다. 대기업식 기안서 체계까지는 아니어도, 뼈대 자체는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시니어도 없고 시스템도 없는 초기 단계에서 대표가 일을 직접 챙기는 건 마이크로매니징이라고 부를 일도 아니다. 그냥 경영이다. 챙길 사람이 대표 말고 없으니까 대표가 챙기는 것뿐이고, 이 단계에서는 오히려 안 챙기는 게 더 큰 문제다.
이게 영원히 가는 건 아니다. 회사가 커지고 경험 있는 시니어들이 들어오고, 어느 정도 자유롭게 풀어놔도 알아서 굴러가는 체계가 갖춰지면 그때부터는 맡겨도 된다. 목장에 비유하면 울타리가 생겨야 소를 풀어놓을 수 있는 것과 같다. 울타리도 없는 상태에서 풀어놓으면 그건 방목이 아니라 방치다. 시니어가 들어왔다고 바로 다 맡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시니어가 회사의 맥락과 리스크를 충분히 파악할 시간, 그리고 그걸 검증해볼 작은 게이트들이 먼저 필요하다.
위임한다고 신경을 끄는 건 아니다
진짜 위임은 게이트를 남겨두는 일이다.
자원이 크게 들어가는 지점, 한 번 실행하면 되돌릴 수 없거나 비용이 크게 드는 지점, 이런 게이트에서는 대표가 계속 관여를 해야 한다. 혹은 적어도 그 흐름이 눈에 보이도록 구조를 짜둬야 한다. 매번 들어가서 하나부터 열까지 손댈 필요는 없지만, 그 흐름과 구조는 계속 봐야 한다는 뜻이다. 이게 경영시스템이다. 위임은 관심을 끄는 게 아니라 어디는 보고 어디는 안 봐도 되는지를 설계하는 일에 가깝다.
설계라는 말이 거창하게 들릴 수 있는데, 실제로는 별게 아니다. 채용을 예로 들면, 서류 검토와 면접은 팀장이 끝까지 진행하고 최종 오퍼 금액과 입사일만 대표가 컨펌하는 식이다. 지출도 비슷하다. 일정 금액 이하는 담당자가 바로 집행하고, 그 내역은 주간 보고에 한 줄로 남기면 된다. 매번 들어가서 과정을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흐름의 끝에서 한 번 확인하는 구조다.
그럼 젠슨 황은 게이트를 관리하는 걸까.
맞다. 다만 그 게이트의 생김새가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결재 라인이랑은 좀 다르다. 알려진 바로는 젠슨 황은 정해진 보고 양식이나 결재 라인 없이, 직원들이 자기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다섯 가지를 짧게 정리해서 보내는 이메일을 받는다. 60명이 넘는 임원들로부터, 그리고 그 아래 실무자들로부터까지 매주 또는 두 주에 한 번씩 올라오는 이 메일들을 하루에 백 통 가까이 직접 읽는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게 승인을 받기 위한 결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직원들은 이 메일을 보내기 전에 누군가의 컨펌을 기다리지 않는다. 이미 자기 판단으로 일을 진행하고, 그 진행 상황과 고민을 공유하는 용도일 뿐이다. 젠슨 황은 이걸 읽고 한 건 한 건에 지시를 내리는 게 아니라, 여러 메일을 가로질러 비슷한 신호가 반복되는지를 본다. 그가 직접 표현한 말로는 약한 신호를 미리 잡아내려는 거라고 하는데, 결국 이건 통제용 게이트가 아니라 정보용 게이트인 셈이다. 실행을 막는 관문이 아니라, 실행은 이미 다 끝난 다음에 흘러들어오는 신호를 모아 보는 창구라는 차이가 있다.
그러니까 같은 게이트라는 말을 쓰고 있어도 종류가 다르다. 누군가의 실행을 멈춰 세우고 컨펌을 받아야 하는 게이트와, 이미 진행된 일에 대한 정보가 흘러들어오는 게이트는 마이크로매니징으로 느껴지는 정도가 완전히 다르다. 전자가 늘어나면 실무자는 매번 허락을 구해야 하고, 후자가 늘어나면 대표는 그냥 더 많이 알게 될 뿐이다. 다만 회사가 더 커지면 이런 정보용 게이트조차 부담이 된다는 점도 함께 알려져 있다. 직원이 3만 명을 넘어가면서 이 메일 시스템도 일부 제한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나온 걸 보면, 정보용 게이트라고 해도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다시 손을 봐야 하는 시점이 온다는 뜻이다.
진짜 마이크로매니징은 게이트가 엉뚱한 데로 갈 때 시작된다
그 게이트가 경영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그냥 대표 개인의 취향이나 집착 포인트로 흘러가는 순간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디자이너가 랜딩페이지 시안 세 개를 가져왔는데, 대표가 그중에서 방향성이나 메시지가 아니라 버튼 색깔 톤과 폰트 굵기까지 하나하나 짚으면서 다시 가져오라고 한다. 이게 반복되면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그게 디렉팅이 아니라 그냥 대표 취향 맞히기 게임이 된다. 폰트가 마음에 안 들어서, 카피 한 줄이 거슬려서, 회의실 의자 배치가 신경 쓰여서 거기까지 다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변질된 마이크로매니징이다.
이게 마이크로매니징인지 아닌지 헷갈릴 때 스스로에게 던져볼 질문은 사실 하나로 충분하다. 이 결정이 회사의 핵심 지표나 방향에 실제로 영향을 주는가, 아니면 그냥 내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인가. 앞쪽이면 관여해도 된다. 뒤쪽이면 손을 떼야 한다.
더 흥미로운 건, 변질된 마이크로매니징을 하는 대표일수록 정작 진짜 중요한 의사결정의 게이트는 직접 관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건 다른 리더나 시니어에게 넘긴다. 책임지는 게 싫어서다. 관여는 하면서도 막상 문제가 생기면 담당자 탓으로 돌리는 경우도 흔하다. 작은 건 다 챙기면서 큰 건 도망가는 셈이니, 사실 이게 더 큰 문제다. 디테일은 대표가 다 챙기는 것처럼 보이는데 책임은 아무도 안 지는 회사, 의외로 흔하다.
그러니까 젠슨 황의 보고 체계를 그대로 따라할 게 아니다. 여기까지가 마이크로매니징의 실체다. 따라해야 할 건 그 보고 체계가 향하는 방향, 즉 핵심 지표를 향해 있느냐는 기준이다. 방향 없이 빈도만 따라하면, 그건 경영이 아니라 그냥 폰트 취향을 매일 확인하는 일이 된다.
그럼 게이트는 실제로 어떻게 잡아야 하나
게이트는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만 둔다
게이트가 열 개, 스무 개씩 있으면 그건 이미 게이트가 아니라 결재 미로다. 월 매출의 일정 비율을 넘는 지출, 계약 기간이 일정 기간 이상인 외부 계약, 사람을 새로 뽑거나 내보내는 결정처럼 되돌리기 어렵거나 돈이 크게 묶이는 지점 몇 개만 정해두는 게 좋다.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없다면, 그중 절반은 게이트가 아니라 그냥 대표의 습관일 가능성이 높다. 새 게이트를 추가하려면 기존 걸 하나 빼는 식으로 가야 한다. 욕심나는 항목은 일단 후보로만 적어둔다.
통과 기준을 숫자나 문장으로 미리 적어둔다
"이건 저한테 한번 보여주세요" 식으로 기준이 그때그때 대표 기분에 따라 바뀌면, 직원 입장에서는 게이트가 아니라 운으로 느껴진다. 얼마 이상, 어떤 조건일 때 거쳐야 하는지를 미리 문서나 채널에 박아두면, 같은 게이트라도 통제가 아니라 절차로 받아들여진다. 숫자로 떨어지는 기준일수록 더 좋다. 모호한 표현은 결국 그날그날 다시 해석되기 마련이다. 이 한 줄이 앞서 말한 설명의 부재 문제도 같이 해결해준다.
게이트는 주기적으로 다시 손본다
회사가 작을 때 만든 게이트를 1년, 2년 지나도 그대로 두는 경우가 많다. 시니어가 들어오고 시스템이 갖춰졌는데도 예전 기준 그대로면, 그건 더 이상 경영이 아니라 관성이다. 분기나 반기에 한 번씩 지금 남아 있는 게이트 목록을 쭉 펴놓고, 이거 아직도 내가 봐야 하나를 스스로 물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원이 늘거나 매출 규모가 바뀌는 시점도 점검하기 좋은 타이밍이다. 통과시켜도 되는데 습관적으로 붙잡고 있는 게이트는 이 타이밍에 제일 잘 보인다. 점검 결과는 짧게라도 팀에 공유해야 효과가 있다.
게이트를 만든 사람이 그 결과도 가져간다
마지막으로, 게이트를 세워놓고 그 게이트를 통과한 결정이 잘못됐을 때 책임을 다른 사람한테 넘기면 그 게이트는 금방 신뢰를 잃는다. 내가 직접 보겠다고 만든 관문이라면, 그 결과도 내가 같이 가져가야 한다. 잘됐을 때만 내 공이면 곤란하다. 탓하는 대상을 보면 게이트의 진짜 주인이 드러난다. 그래야 직원들도 이 게이트가 권력이 아니라 책임의 자리라는 걸 받아들인다.
그런데 게이트의 위치보다 먼저 봐야 할 게 있다
기준은 여기까지 그대로다. 핵심 지표냐 개인 취향이냐. 그런데 같은 기준으로 게이트를 정확히 골랐다고 해도, 직원들이 그걸 마이크로매니징으로 느끼는 경우가 여전히 생긴다. 그 위에 한 겹 더 봐야 할 게 있다는 뜻이다. 바로 그 게이트가 왜 거기 있는지 설명을 들었느냐다.
똑같은 결재 라인, 똑같은 승인 단계라도 그 이유를 알고 있는 직원과 모르고 있는 직원이 받아들이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이 비용 승인은 캐시플로우 때문이라는 걸 아는 사람한테는 그게 관리이고, 그냥 대표가 또 막았다고 느끼는 사람한테는 그게 통제다. 결국 같은 게이트를 두고도 한쪽은 신뢰를 느끼고 한쪽은 의심을 느끼는 거다. 심지어 같은 사람도 입사 초반엔 통제로 느끼다가, 회사 사정을 알게 된 뒤로는 같은 게이트를 관리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니까 회사가 커질수록 대표가 진짜 신경 써야 하는 건 게이트를 어디까지 풀 것인가만이 아니라, 남겨둔 게이트마다 그 이유를 얼마나 투명하게 알려주고 있느냐다. 게이트는 줄이지 않아도 된다. 다만 그 게이트 앞에 "왜"라는 설명이 따라붙는 순간, 마이크로매니징이라는 말은 더 이상 그 자리에 붙지 않는다. 그 한 줄을 적어두는 일이, 어떤 게이트를 없앨까 고민하는 일보다 훨씬 빠르고 효과도 크다. 봉인을 풀 것이냐 말 것이냐보다, 그 봉인 뒤에 이유를 적어두느냐가 사실 더 중요한 질문이다.

요즘 스타트업 대표들 사이에서 한 번씩 회자되는 인터뷰가 있다. 젠슨 황이 지금도 전 직원의 업무 보고를 직접 받는다는 이야기다. 엔비디아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회사를 이끄는 사람이 그렇게 한다니까 다들 반응이 비슷했다. 대표들 모인 단체 채팅방마다 이 인터뷰 링크가 며칠째 돌아다닌다는 얘기도 들린다. 똑같은 얘기를 무명의 중소기업 대표가 했다면 그냥 한 줄 뉴스로 지나갔을 텐데, 젠슨 황이라는 이름값이 무게를 다르게 만들었다.
그동안 다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살아온 대표들의 봉인이 이번에 풀린 거다. 솔직히 말하면 그 마음의 본질은 신뢰가 아니라 불안이었던 경우가 많다. 막상 맡겨놓고도 못 믿겨서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싶은 게 진짜 속내였다. 그런데 좋은 리더는 마이크로매니징보다 신뢰와 위임을 한다는 말이 워낙 정설처럼 퍼져 있다 보니, 좋은 경영자로 보이고 싶고 비난받기는 싫어서 일단 참는 쪽을 택했다. 들여다보고 싶을 때마다 몰래 슬쩍 확인하고 넘어가는 식으로 버틴 대표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젠슨 황도 저렇게 한다는데"라는 한 마디로 합리화가 가능해졌다. 굳이 몰래 할 필요도 없어진 셈이다. 이참에 나도 다 들여다봐야겠다고 마음먹은 대표가 한둘이 아닐 거다. 당장 다음 주 회의부터 보고 방식을 바꿔보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위임에는 자격이 필요하다
위임과 신뢰가 중요하다는 말,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위임이라는 단어를 너무 낭만적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위임은 권한만 넘기는 게 아니라 그 권한을 책임감 있게 써낼 능력까지 같이 넘기는 일이다. 받는 사람이 적어도 그 일을 스스로 판단하고 처리할 전문성과 경험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초기 스타트업엔 그런 사람이 별로 없다. 주니어가 대부분이고 시니어는 아직 못 뽑았거나 못 들였다. 이 상황에서 주니어한테까지 권한을 던져버리면 그건 위임이 아니라 방치에 가깝다. 일이 잘못됐을 때 결국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 책임을 질 준비가 안 된 사람한테 권한만 쥐여준 셈이니까.
식당으로 치면, 막 오픈한 1호점 사장님이 주방도 보고 서빙도 하고 카운터까지 보는 거랑 비슷하다. 직원이 아직 레시피도 익숙하지 않고 단골 응대 경험도 없는데 오늘부터 알아서 해보라고 할 수는 없다. 사람만 부족한 게 아니라 시스템도 없다. 시스템이나 프로세스가 곧 관료주의는 아니다. 규칙 없음을 표방했던 넷플릭스조차 비용 처리나 내부 승인 절차 같은 최소한의 프로세스는 갖고 있었다. 대기업식 기안서 체계까지는 아니어도, 뼈대 자체는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시니어도 없고 시스템도 없는 초기 단계에서 대표가 일을 직접 챙기는 건 마이크로매니징이라고 부를 일도 아니다. 그냥 경영이다. 챙길 사람이 대표 말고 없으니까 대표가 챙기는 것뿐이고, 이 단계에서는 오히려 안 챙기는 게 더 큰 문제다.
이게 영원히 가는 건 아니다. 회사가 커지고 경험 있는 시니어들이 들어오고, 어느 정도 자유롭게 풀어놔도 알아서 굴러가는 체계가 갖춰지면 그때부터는 맡겨도 된다. 목장에 비유하면 울타리가 생겨야 소를 풀어놓을 수 있는 것과 같다. 울타리도 없는 상태에서 풀어놓으면 그건 방목이 아니라 방치다. 시니어가 들어왔다고 바로 다 맡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시니어가 회사의 맥락과 리스크를 충분히 파악할 시간, 그리고 그걸 검증해볼 작은 게이트들이 먼저 필요하다.
위임한다고 신경을 끄는 건 아니다
진짜 위임은 게이트를 남겨두는 일이다.
자원이 크게 들어가는 지점, 한 번 실행하면 되돌릴 수 없거나 비용이 크게 드는 지점, 이런 게이트에서는 대표가 계속 관여를 해야 한다. 혹은 적어도 그 흐름이 눈에 보이도록 구조를 짜둬야 한다. 매번 들어가서 하나부터 열까지 손댈 필요는 없지만, 그 흐름과 구조는 계속 봐야 한다는 뜻이다. 이게 경영시스템이다. 위임은 관심을 끄는 게 아니라 어디는 보고 어디는 안 봐도 되는지를 설계하는 일에 가깝다.
설계라는 말이 거창하게 들릴 수 있는데, 실제로는 별게 아니다. 채용을 예로 들면, 서류 검토와 면접은 팀장이 끝까지 진행하고 최종 오퍼 금액과 입사일만 대표가 컨펌하는 식이다. 지출도 비슷하다. 일정 금액 이하는 담당자가 바로 집행하고, 그 내역은 주간 보고에 한 줄로 남기면 된다. 매번 들어가서 과정을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흐름의 끝에서 한 번 확인하는 구조다.
그럼 젠슨 황은 게이트를 관리하는 걸까.
맞다. 다만 그 게이트의 생김새가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결재 라인이랑은 좀 다르다. 알려진 바로는 젠슨 황은 정해진 보고 양식이나 결재 라인 없이, 직원들이 자기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다섯 가지를 짧게 정리해서 보내는 이메일을 받는다. 60명이 넘는 임원들로부터, 그리고 그 아래 실무자들로부터까지 매주 또는 두 주에 한 번씩 올라오는 이 메일들을 하루에 백 통 가까이 직접 읽는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게 승인을 받기 위한 결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직원들은 이 메일을 보내기 전에 누군가의 컨펌을 기다리지 않는다. 이미 자기 판단으로 일을 진행하고, 그 진행 상황과 고민을 공유하는 용도일 뿐이다. 젠슨 황은 이걸 읽고 한 건 한 건에 지시를 내리는 게 아니라, 여러 메일을 가로질러 비슷한 신호가 반복되는지를 본다. 그가 직접 표현한 말로는 약한 신호를 미리 잡아내려는 거라고 하는데, 결국 이건 통제용 게이트가 아니라 정보용 게이트인 셈이다. 실행을 막는 관문이 아니라, 실행은 이미 다 끝난 다음에 흘러들어오는 신호를 모아 보는 창구라는 차이가 있다.
그러니까 같은 게이트라는 말을 쓰고 있어도 종류가 다르다. 누군가의 실행을 멈춰 세우고 컨펌을 받아야 하는 게이트와, 이미 진행된 일에 대한 정보가 흘러들어오는 게이트는 마이크로매니징으로 느껴지는 정도가 완전히 다르다. 전자가 늘어나면 실무자는 매번 허락을 구해야 하고, 후자가 늘어나면 대표는 그냥 더 많이 알게 될 뿐이다. 다만 회사가 더 커지면 이런 정보용 게이트조차 부담이 된다는 점도 함께 알려져 있다. 직원이 3만 명을 넘어가면서 이 메일 시스템도 일부 제한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나온 걸 보면, 정보용 게이트라고 해도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다시 손을 봐야 하는 시점이 온다는 뜻이다.
진짜 마이크로매니징은 게이트가 엉뚱한 데로 갈 때 시작된다
그 게이트가 경영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그냥 대표 개인의 취향이나 집착 포인트로 흘러가는 순간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디자이너가 랜딩페이지 시안 세 개를 가져왔는데, 대표가 그중에서 방향성이나 메시지가 아니라 버튼 색깔 톤과 폰트 굵기까지 하나하나 짚으면서 다시 가져오라고 한다. 이게 반복되면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그게 디렉팅이 아니라 그냥 대표 취향 맞히기 게임이 된다. 폰트가 마음에 안 들어서, 카피 한 줄이 거슬려서, 회의실 의자 배치가 신경 쓰여서 거기까지 다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변질된 마이크로매니징이다.
이게 마이크로매니징인지 아닌지 헷갈릴 때 스스로에게 던져볼 질문은 사실 하나로 충분하다. 이 결정이 회사의 핵심 지표나 방향에 실제로 영향을 주는가, 아니면 그냥 내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인가. 앞쪽이면 관여해도 된다. 뒤쪽이면 손을 떼야 한다.
더 흥미로운 건, 변질된 마이크로매니징을 하는 대표일수록 정작 진짜 중요한 의사결정의 게이트는 직접 관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건 다른 리더나 시니어에게 넘긴다. 책임지는 게 싫어서다. 관여는 하면서도 막상 문제가 생기면 담당자 탓으로 돌리는 경우도 흔하다. 작은 건 다 챙기면서 큰 건 도망가는 셈이니, 사실 이게 더 큰 문제다. 디테일은 대표가 다 챙기는 것처럼 보이는데 책임은 아무도 안 지는 회사, 의외로 흔하다.
그러니까 젠슨 황의 보고 체계를 그대로 따라할 게 아니다. 여기까지가 마이크로매니징의 실체다. 따라해야 할 건 그 보고 체계가 향하는 방향, 즉 핵심 지표를 향해 있느냐는 기준이다. 방향 없이 빈도만 따라하면, 그건 경영이 아니라 그냥 폰트 취향을 매일 확인하는 일이 된다.
그럼 게이트는 실제로 어떻게 잡아야 하나
게이트는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만 둔다
게이트가 열 개, 스무 개씩 있으면 그건 이미 게이트가 아니라 결재 미로다. 월 매출의 일정 비율을 넘는 지출, 계약 기간이 일정 기간 이상인 외부 계약, 사람을 새로 뽑거나 내보내는 결정처럼 되돌리기 어렵거나 돈이 크게 묶이는 지점 몇 개만 정해두는 게 좋다.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없다면, 그중 절반은 게이트가 아니라 그냥 대표의 습관일 가능성이 높다. 새 게이트를 추가하려면 기존 걸 하나 빼는 식으로 가야 한다. 욕심나는 항목은 일단 후보로만 적어둔다.
통과 기준을 숫자나 문장으로 미리 적어둔다
"이건 저한테 한번 보여주세요" 식으로 기준이 그때그때 대표 기분에 따라 바뀌면, 직원 입장에서는 게이트가 아니라 운으로 느껴진다. 얼마 이상, 어떤 조건일 때 거쳐야 하는지를 미리 문서나 채널에 박아두면, 같은 게이트라도 통제가 아니라 절차로 받아들여진다. 숫자로 떨어지는 기준일수록 더 좋다. 모호한 표현은 결국 그날그날 다시 해석되기 마련이다. 이 한 줄이 앞서 말한 설명의 부재 문제도 같이 해결해준다.
게이트는 주기적으로 다시 손본다
회사가 작을 때 만든 게이트를 1년, 2년 지나도 그대로 두는 경우가 많다. 시니어가 들어오고 시스템이 갖춰졌는데도 예전 기준 그대로면, 그건 더 이상 경영이 아니라 관성이다. 분기나 반기에 한 번씩 지금 남아 있는 게이트 목록을 쭉 펴놓고, 이거 아직도 내가 봐야 하나를 스스로 물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원이 늘거나 매출 규모가 바뀌는 시점도 점검하기 좋은 타이밍이다. 통과시켜도 되는데 습관적으로 붙잡고 있는 게이트는 이 타이밍에 제일 잘 보인다. 점검 결과는 짧게라도 팀에 공유해야 효과가 있다.
게이트를 만든 사람이 그 결과도 가져간다
마지막으로, 게이트를 세워놓고 그 게이트를 통과한 결정이 잘못됐을 때 책임을 다른 사람한테 넘기면 그 게이트는 금방 신뢰를 잃는다. 내가 직접 보겠다고 만든 관문이라면, 그 결과도 내가 같이 가져가야 한다. 잘됐을 때만 내 공이면 곤란하다. 탓하는 대상을 보면 게이트의 진짜 주인이 드러난다. 그래야 직원들도 이 게이트가 권력이 아니라 책임의 자리라는 걸 받아들인다.
그런데 게이트의 위치보다 먼저 봐야 할 게 있다
기준은 여기까지 그대로다. 핵심 지표냐 개인 취향이냐. 그런데 같은 기준으로 게이트를 정확히 골랐다고 해도, 직원들이 그걸 마이크로매니징으로 느끼는 경우가 여전히 생긴다. 그 위에 한 겹 더 봐야 할 게 있다는 뜻이다. 바로 그 게이트가 왜 거기 있는지 설명을 들었느냐다.
똑같은 결재 라인, 똑같은 승인 단계라도 그 이유를 알고 있는 직원과 모르고 있는 직원이 받아들이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이 비용 승인은 캐시플로우 때문이라는 걸 아는 사람한테는 그게 관리이고, 그냥 대표가 또 막았다고 느끼는 사람한테는 그게 통제다. 결국 같은 게이트를 두고도 한쪽은 신뢰를 느끼고 한쪽은 의심을 느끼는 거다. 심지어 같은 사람도 입사 초반엔 통제로 느끼다가, 회사 사정을 알게 된 뒤로는 같은 게이트를 관리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니까 회사가 커질수록 대표가 진짜 신경 써야 하는 건 게이트를 어디까지 풀 것인가만이 아니라, 남겨둔 게이트마다 그 이유를 얼마나 투명하게 알려주고 있느냐다. 게이트는 줄이지 않아도 된다. 다만 그 게이트 앞에 "왜"라는 설명이 따라붙는 순간, 마이크로매니징이라는 말은 더 이상 그 자리에 붙지 않는다. 그 한 줄을 적어두는 일이, 어떤 게이트를 없앨까 고민하는 일보다 훨씬 빠르고 효과도 크다. 봉인을 풀 것이냐 말 것이냐보다, 그 봉인 뒤에 이유를 적어두느냐가 사실 더 중요한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