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47] 17년, 사람을 바라보는 일 – HR 담당자로 살아오며 느낀 것들 (EDGE 6기 오윤)

오윤
202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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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조직에 들어온 뒤 어느덧 17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처음 HR 업무를 맡게 되었을 때만 해도 인사(人事)는 ‘회사를 운영하는 기술적인 업무’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채용, 평가, 보상, 승진을 설계하며, 조직이 효율적으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일. 어쩌면 그것이 HR의 전부라고 믿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생각은 조금씩 달라졌다. 물론 제도는 중요했다. 직원 선발 기준도 중요했고, 평가의 공정성도 어느 것 보다 더 중요했다. 보상 체계, 임직원 교육 시스템 역시 조직 운영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오랜 시간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느낀 것은, 조직은 생각보다 훨씬 감정적인 공간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조직 내 사람들은 결코 제도만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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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동안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새로운 기대를 안고 입사한 신입직원, 조직 안에서 인정받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했던 구성원, 승진에서 누락된 뒤 깊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던 직원, 조용히 사직서를 제출하고 회사를 떠나던 사람들까지. HR 담당자는 조직의 거의 모든 장면을 가까이에서 보게 된다. 누군가의 기쁨도, 누군가의 좌절도 결국 HR의 업무와 연결된다.

처음에는 인사제도가 사람을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오히려 반대에 가까운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결국 조직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었다. 같은 제도 아래에서도 어떤 조직은 활력이 넘쳤고, 어떤 조직은 침묵으로 가득했다. 같은 평가제도를 운영해도 구성원들이 신뢰하는 조직이 있었고, 아무도 결과를 납득하지 못하는 조직도 있었다. 제도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제도가 운영되는 분위기와 사람들의 신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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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오랜 기간 조직을 보며 가장 많이 느낀 것은 ‘말하지 않는 조직’의 위험성이었다. 대부분의 조직은 겉으로는 큰 문제 없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회의는 진행되고 보고서는 올라가며 업무도 일정대로 흘러간다. 하지만 조직이 건강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가장 위험한 신호는 의외로 갈등이 아니라 침묵이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쉽게 말을 아끼기 시작한다. 괜히 문제를 제기했다가 피곤해질까 봐, 괜히 나섰다가 불이익을 받을까 봐, 혹은 이미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바뀌지 않았다는 학습된 경험 때문에 입을 닫는다. 그리고 그런 침묵이 반복되면 조직은 점점 무뎌진다. 현장의 문제는 위로 전달되지 않고, 구성원들은 점점 조직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는다.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실제로는 활력을 잃어가는 상태에 가까워진다.

HR 업무를 하며 가장 어려운 순간도 바로 그런 장면들이었다. 직원들이 더 이상 말하지 않는 순간이었다. 불만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대가 사라졌기 때문에 조용해지는 상태. 어쩌면 그것이 조직 입장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인지도 모른다. 시끄러운 조직은 아직 살아 있는 조직일 수 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조직은 이미 지쳐버린 조직일 가능성이 크다.

채용 업무를 오래 하며 느낀 점도 있다. 많은 조직이 채용을 단기적인 충원으로 바라보지만, 실제 채용은 조직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에 가깝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채용은 단순히 한 명이 들어오는 문제가 아니다. 그 사람이 팀 분위기에 미치는 영향, 향후 성과, 조직문화에 주는 파급력까지 생각하면 채용은 매우 장기적인 투자다.

실제로 현장에서 보면 뛰어난 인재 한 명이 조직 전체 분위기를 바꾸는 경우도 있었다. 반대로 잘못된 채용 하나가 팀 전체를 오랫동안 흔드는 장면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채용은 단순히 ‘스펙을 선별하는 일’이 아니라 조직과 맞는 사람(Right people)을 찾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역량도 중요하지만 태도와 관계 맺는 방식 역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요소였다.

평가와 보상 역시 마찬가지였다. 완벽한 평가제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보상체계도 현실적으로는 어려웠다. HR담당자는 늘 그 사이에서 균형을 고민하게 된다. 조직의 방향성과 구성원의 수용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고, 때로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한다. 한쪽 입장만을 바라볼 수는 없기에 HR은 생각보다 외로운 부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며 분명하게 느낀 것이 있다. 사람들은 결과 자체보다 ‘어떻게 대우받았는가’를 더 오래 기억한다는 점이다. 승진이 되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존중받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조직에 남는다. 반대로 원하는 결과를 얻었더라도 과정에서 무시당했다고 느끼면 마음은 조직에서 멀어진다. 결국 공정성은 숫자나 결과만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설명과 태도, 그리고 존중의 방식까지 포함된 개념에 가까웠다.

교육 업무 역시 비슷했다. 과거에는 좋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면 조직이 자연스럽게 변화할 것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 현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교육도 현업 분위기와 조직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오래 지속되기 어려웠다. 반대로 작은 변화라도 리더의 태도가 달라지면 구성원들의 분위기가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조직문화는 거창한 구호보다 일상 속 작은 경험들의 반복에 가까웠다.

17년 동안 수많은 보고서를 만들고, 여러 제도를 검토하고, 다양한 회의에 참석했다. 때로는 조직의 입장에서 고민했고, 때로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HR은 사람을 숫자로만 볼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도 점점 더 깊이 느끼게 되었다. 조직은 시스템으로 운영되지만, 그 안의 사람들은 여전히 감정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HR 업무는 결국 사람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과정이었다. 누군가는 인정받고 싶어 했고, 누군가는 안정감을 원했으며, 또 누군가는 자신의 의견이 존중받기를 바랐다. 조직 안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갈등과 문제들도 결국은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아직도 정답은 잘 모르겠다. 어떤 제도가 완벽한지, 어떤 조직문화가 이상적인지 쉽게 말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조직은 결국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HR은 그 사람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일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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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동안 인사 업무를 하며 가장 크게 남은 것은 화려한 성과나 숫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누군가의 표정, 회의실 안의 분위기, 조용히 건넸던 한마디 같은 장면들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아마 앞으로도 조직은 계속 변할 것이다. 기술도 변하고 세대도 변하며 일하는 방식도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존중받고 싶어 하는 마음만큼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HR의 역할도 결국 거기에서 출발해야 하는지 모른다. 사람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조금 더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일. 현장에서 느낀 가장 큰 소회 역시 결국 그 지점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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