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공지
"다음 주 신규 입사자를 소개합니다. A 대기업에서 10년 동안 해외영업을 해오신 분입니다."
그리고 6개월 뒤,
"퇴직 안내드립니다."
스타트업에서 채용 업무를 하다 보면 이런 일을 생각보다 자주 겪는다. 공들여 모셔온 대기업, 외국계 출신 경력직이 반년, 길어야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회사를 떠난다. 입사 안내 메일을 썼던 내가 몇 달 뒤 같은 사람의 퇴직 안내 메일을 쓰고 있다.
스타트업은 누구를 뽑을까
초기 스타트업은 주로 신입을 뽑는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맡아줄 수 있고, 회사와 같이 성장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인건비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사가 스케일업 단계에 들어서면 상황이 바뀐다. 체계를 잡고 시장을 넓히려면 경험과 네트워크를 갖춘 경력직이 필요해진다. 이때부터 대기업이나 외국계 출신을 데려오기 위해 여기저기 발품을 팔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연봉만 보고 안정적인 회사를 그만두고 올까? 내가 지켜본 경우는 대부분 그렇지 않았다. 내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볼 수 있다는 기대, 직접 팀을 꾸려서 이끌어볼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오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근로계약서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지만 입사하는 사람 마음속에는 분명히 자리 잡은 약속이다. 이를 심리적 계약(Rousseau, 1989)이라고 한다.
권한은 있어 보이지만,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입사한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기대를 잔뜩 안고 들어왔는데 막상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부터 애매하다. 팀장을 맡아 제대로 해보려던 참에, 아직 비즈니스 모델이 정해지지 않은 회사는 몇 달 만에 방향을 튼다. 팀은 없어지거나 다른 팀과 합쳐지고, 업무 범위와 책임(R&R)도 처음부터 다시 정해야 한다. 뭘 먼저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경영진은 왜 아직 성과가 안 나오냐고 묻는다.
대기업에 있을 때는 권한은 크지 않아도 내가 할 일은 분명했다. 스타트업에 와보니 권한은 있는 것 같은데 정작 내 역할이 뭔지 잘 모르겠다.

[그림 1] 대기업과 스타트업, 권한과 역할 명확성의 차이 (AI생성 이미지)
심리학자 프레더릭 허즈버그(Herzberg, 1968)는 사람을 일하게 만드는 요인과 불만을 만드는 요인이 따로 있다고 봤다. 성취, 인정, 일 자체, 책임, 성장처럼 일 안에서 얻는 것들은 동기를 끌어올리는 내재적 요인이다. 반대로 급여, 근무환경, 회사 정책, 대인관계 같은 외재적 요인은 부족하면 불만이 생기지만, 충분히 채워준다고 해서 더 열심히 일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가 12개 조사를 종합해보니 직원들이 일하면서 가장 만족했던 순간에 가장 많이 나온 요인은 성취와 인정이었고, 급여는 생각보다 비중이 작았다.
스타트업이 경력직을 데려올 때 내세우는 건 보통 연봉과 직급이다. 허즈버그의 구분으로 보면 외재적 요인이다. 그런데 이들이 정말 원했던 성취, 인정, 책임은 잦은 조직개편과 애매한 역할 속에서 가장 먼저 흔들린다. 성과를 보여줄 시간이 없으니 인정받을 기회도 없다. 연봉을 올려줘도 사람을 붙잡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그림 2] 직무 태도에 영향을 미친 요인 (Herzberg, 1968, Exhibit 1 재구성) (AI생성 이미지)
퇴사 면담을 해보면 이 부분이 더 잘 보인다. 처음에는 대부분 처우나 커리어 방향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다 보면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맡았던 팀이 없어졌을 때, 몇 달 준비한 계획이 회의 한 번에 뒤집혔을 때 힘이 빠졌다는 이야기다. 퇴사 사유란에는 한 줄만 적지만, 실제로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럼 HR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면접에서 회사 상황을 솔직하게 말해주라는 조언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실제 채용 현장에서는 쉽지 않다. 좋은 사람을 두고 다른 회사와 경쟁하는 상황에서 우리 회사의 불안한 부분부터 꺼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나는 조금 다른 방법을 생각한다. 우리 회사의 약점을 털어놓는 대신, 스타트업이라는 곳이 원래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시장 반응에 따라 비즈니스 모델이 바뀔 수 있고, 그에 맞춰 조직도 자주 바뀌며, 지금 맡는 역할이 1년 뒤에도 그대로일 거라는 보장은 없다는 점이다. 면접과 온보딩 때 이런 내용을 스타트업의 일반적인 특성으로 미리 설명해두면, 나중에 조직개편이 있어도 입사자가 이를 자신의 실패로 받아들이는 일이 줄어든다.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일하는 중간중간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문화다. 스타트업에서 R&R이 바뀌는 건 어쩔 수 없다. 대신 역할이 바뀌더라도 지금 내가 무엇으로 평가받는지는 분명해야 한다. 연말 평가까지 기다리지 말고 인사팀이나 경영진과 수시로 기대치와 기여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평가 기준이 보이면 조직이 흔들려도 무엇을 해야 할지는 놓치지 않는다.
우리 회사 높은 턴오버률, 성장통으로 바라보기
모든 이직을 막을 수는 없고, 굳이 다 막을 필요도 없다. 목표는 턴오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막을 수 있었던 이직을 줄이는 것이다.
회사도 이런 이직이 반복될 때 개인의 적응력이나 역량 탓으로만 돌릴 필요는 없다. 아직 방향을 찾고 있는 조직과 자기 자리를 찾으려는 개인이 서로 맞춰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마찰에 가깝다. 스타트업이 커가면서 겪는 성장통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성장통은 피할 수 없지만, 어떻게 겪느냐에 따라 조직은 달라진다. 다음에 보내는 신규 입사자 소개 메일이 6개월 뒤 퇴직 안내 메일로 돌아오지 않도록, 스타트업 HR로서 계속 고민해보려 한다.
[참고문헌]
Herzberg, F. (1968). One more time: How do you motivate employees? Harvard Business Review, 46(1), 53–62.
Rousseau, D. M. (1989). Psychological and implied contracts in organizations. Employee Responsibilities and Rights Journal, 2(2), 121–139.

인사공지
"다음 주 신규 입사자를 소개합니다. A 대기업에서 10년 동안 해외영업을 해오신 분입니다."
그리고 6개월 뒤,
"퇴직 안내드립니다."
스타트업에서 채용 업무를 하다 보면 이런 일을 생각보다 자주 겪는다. 공들여 모셔온 대기업, 외국계 출신 경력직이 반년, 길어야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회사를 떠난다. 입사 안내 메일을 썼던 내가 몇 달 뒤 같은 사람의 퇴직 안내 메일을 쓰고 있다.
스타트업은 누구를 뽑을까
초기 스타트업은 주로 신입을 뽑는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맡아줄 수 있고, 회사와 같이 성장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인건비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사가 스케일업 단계에 들어서면 상황이 바뀐다. 체계를 잡고 시장을 넓히려면 경험과 네트워크를 갖춘 경력직이 필요해진다. 이때부터 대기업이나 외국계 출신을 데려오기 위해 여기저기 발품을 팔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연봉만 보고 안정적인 회사를 그만두고 올까? 내가 지켜본 경우는 대부분 그렇지 않았다. 내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볼 수 있다는 기대, 직접 팀을 꾸려서 이끌어볼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오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근로계약서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지만 입사하는 사람 마음속에는 분명히 자리 잡은 약속이다. 이를 심리적 계약(Rousseau, 1989)이라고 한다.
권한은 있어 보이지만,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입사한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기대를 잔뜩 안고 들어왔는데 막상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부터 애매하다. 팀장을 맡아 제대로 해보려던 참에, 아직 비즈니스 모델이 정해지지 않은 회사는 몇 달 만에 방향을 튼다. 팀은 없어지거나 다른 팀과 합쳐지고, 업무 범위와 책임(R&R)도 처음부터 다시 정해야 한다. 뭘 먼저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경영진은 왜 아직 성과가 안 나오냐고 묻는다.
대기업에 있을 때는 권한은 크지 않아도 내가 할 일은 분명했다. 스타트업에 와보니 권한은 있는 것 같은데 정작 내 역할이 뭔지 잘 모르겠다.
[그림 1] 대기업과 스타트업, 권한과 역할 명확성의 차이 (AI생성 이미지)
심리학자 프레더릭 허즈버그(Herzberg, 1968)는 사람을 일하게 만드는 요인과 불만을 만드는 요인이 따로 있다고 봤다. 성취, 인정, 일 자체, 책임, 성장처럼 일 안에서 얻는 것들은 동기를 끌어올리는 내재적 요인이다. 반대로 급여, 근무환경, 회사 정책, 대인관계 같은 외재적 요인은 부족하면 불만이 생기지만, 충분히 채워준다고 해서 더 열심히 일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가 12개 조사를 종합해보니 직원들이 일하면서 가장 만족했던 순간에 가장 많이 나온 요인은 성취와 인정이었고, 급여는 생각보다 비중이 작았다.
스타트업이 경력직을 데려올 때 내세우는 건 보통 연봉과 직급이다. 허즈버그의 구분으로 보면 외재적 요인이다. 그런데 이들이 정말 원했던 성취, 인정, 책임은 잦은 조직개편과 애매한 역할 속에서 가장 먼저 흔들린다. 성과를 보여줄 시간이 없으니 인정받을 기회도 없다. 연봉을 올려줘도 사람을 붙잡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퇴사 면담을 해보면 이 부분이 더 잘 보인다. 처음에는 대부분 처우나 커리어 방향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다 보면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맡았던 팀이 없어졌을 때, 몇 달 준비한 계획이 회의 한 번에 뒤집혔을 때 힘이 빠졌다는 이야기다. 퇴사 사유란에는 한 줄만 적지만, 실제로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럼 HR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면접에서 회사 상황을 솔직하게 말해주라는 조언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실제 채용 현장에서는 쉽지 않다. 좋은 사람을 두고 다른 회사와 경쟁하는 상황에서 우리 회사의 불안한 부분부터 꺼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나는 조금 다른 방법을 생각한다. 우리 회사의 약점을 털어놓는 대신, 스타트업이라는 곳이 원래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시장 반응에 따라 비즈니스 모델이 바뀔 수 있고, 그에 맞춰 조직도 자주 바뀌며, 지금 맡는 역할이 1년 뒤에도 그대로일 거라는 보장은 없다는 점이다. 면접과 온보딩 때 이런 내용을 스타트업의 일반적인 특성으로 미리 설명해두면, 나중에 조직개편이 있어도 입사자가 이를 자신의 실패로 받아들이는 일이 줄어든다.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일하는 중간중간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문화다. 스타트업에서 R&R이 바뀌는 건 어쩔 수 없다. 대신 역할이 바뀌더라도 지금 내가 무엇으로 평가받는지는 분명해야 한다. 연말 평가까지 기다리지 말고 인사팀이나 경영진과 수시로 기대치와 기여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평가 기준이 보이면 조직이 흔들려도 무엇을 해야 할지는 놓치지 않는다.
우리 회사 높은 턴오버률, 성장통으로 바라보기
모든 이직을 막을 수는 없고, 굳이 다 막을 필요도 없다. 목표는 턴오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막을 수 있었던 이직을 줄이는 것이다.
회사도 이런 이직이 반복될 때 개인의 적응력이나 역량 탓으로만 돌릴 필요는 없다. 아직 방향을 찾고 있는 조직과 자기 자리를 찾으려는 개인이 서로 맞춰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마찰에 가깝다. 스타트업이 커가면서 겪는 성장통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성장통은 피할 수 없지만, 어떻게 겪느냐에 따라 조직은 달라진다. 다음에 보내는 신규 입사자 소개 메일이 6개월 뒤 퇴직 안내 메일로 돌아오지 않도록, 스타트업 HR로서 계속 고민해보려 한다.
[참고문헌]
Herzberg, F. (1968). One more time: How do you motivate employees? Harvard Business Review, 46(1), 53–62.
Rousseau, D. M. (1989). Psychological and implied contracts in organizations. Employee Responsibilities and Rights Journal, 2(2), 121–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