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 얘기가 나오면 다들 프레임워크부터 떠올린다. 2x2 매트릭스에 그럴싸한 영어 이름 붙이고, 시장분석 하고, 대상분석 하고, 마지막에 솔루션 내놓는 그 익숙한 흐름. 유명한 전략 컨설팅펌들은 저마다의 방법론이 있고, 그 방법론이라는 게 결국 시장과 클라이언트를 좀 더 정교하게 뜯어보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어떤 특정 방법론이 좋다 나쁘다를 얘기하려는 건 아니고.
분석도 중요하고 솔루션도 중요하다는 건 다들 안다. 시장이랑 클라이언트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분석 없이는 솔루션도 제대로 나오기 힘들다. 그리고 이 분석이라는 작업 자체가 내부 사람은 하기 어려운 영역이라 외부 시선이 필요하기도 하다. 솔루션도 마찬가지로 그동안의 고민, 경험, 글로벌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나온다. 여기까지는 다들 아는 원론. 근데 좀 다른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클라이언트는 정말 뭘 원할까. 분석일까 솔루션일까.
덩치 큰 회사들이 유독 분석에 목매는 이유
먼저 규모도 크고 비즈니스모델도 안정적인 중견기업 이상을 한 그룹으로 묶어보자. 이런 곳들은 컨설팅을 자주 받긴 받는데, 주로 전략 컨설팅 쪽이다. HR 컨설팅도 하긴 하지만 나 같은 자문 형태보다는 좀 더 전략컨설팅스러운, 그러니까 각 잡힌 보고서가 나오는 제도 컨설팅이 대부분이다.
이 그룹에서 재밌는 지점은, 분석과 솔루션 중에 유독 분석에 더 힘을 준다는 거다. 왜냐면 솔루션은 사실 자기들도 이미 고민해본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런 회사 전략/기획 직원들도 만만치 않게 똑똑하고, 컨설팅 출신들도 수두룩하다. 게다가 매일 그 사업을 직접 굴리는 사람들이니 솔루션에 대해서는 오히려 컨설턴트보다 더 잘 알 수도 있다. 다만 여러 사정으로 그걸 실행에 못 옮기고 있을 뿐. 회의 몇 번만 들어가 봐도 답은 이미 나와 있는데, 그걸 실제로 밀어붙이려면 누군가는 부딪히고 누군가는 손해를 봐야 하니 다들 알면서도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 흔하다.
그러면 왜 분석이 더 중요해지느냐. 여기서 분석 리포트는 사실 순수한 진단서라기보다 명분에 가깝다. 대표나 경영진이 이미 마음속으로 정한 방향, 정리하고 싶은 부서나 사람, 밀어붙이고 싶은 신사업 같은 것들을 실행할 때 필요한 근거로 쓰인다는 얘기다. 분석이라는 게 결국 리포트인지라,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정보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눈치 빠르고 영업 잘하는 시니어 PM들은 이걸 안다. 그래서 프로젝트 초반에 대표나 경영진과 몇 번 티타임을 갖거나 킥오프 미팅을 하면서, 이번 컨설팅으로 어떤 결론이 나오면 좋을지 은근히 감을 잡아둔다. 그리고 분석의 뼈대와 톤을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맞춰간다. 인터뷰 대상자를 누구로 할지, 어떤 데이터를 더 파고들지, 심지어 설문 문항을 어떻게 설계할지까지도 이미 그 결론을 향해 은근히 정렬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분석이 진짜 발견의 도구라기보다, 이미 정해진 결론에 힘을 실어주는 절차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이게 나쁘다고만 볼 수도 없는 게, 조직이 크다는 건 그만큼 이해관계자도 많고 저항도 크다는 뜻이라, 외부 컨설팅이라는 권위 있는 이름을 빌려야만 겨우 움직이는 관성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선 이 분석이라는 절차 자체가 조직 내 갈등을 완충시켜주는 정치적 쿠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스타트업은 반대로, 다 아는 얘기를 다시 듣기 싫어한다
이번엔 아직 궤도에 오르지 않은 스타트업 그룹을 보자. 여긴 완전히 반대다. 일단 전략 컨설팅 자체를 잘 받지 않는다. 비싸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창업자의 인사이트와 실행 의지를 컨설팅펌이 따라잡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컨설팅 회사가 지식은 많을지 몰라도 0에서 1을 만들어내는 건 다른 얘기고, 합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그 고집과 추진력이 결국 창업이라는 걸 만들어낸 거니까.
그래서 스타트업이 받는 컨설팅은 대개 HR이나 마케팅, 요즘이면 AX 같은 특정 스킬 영역에 몰려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분석과 솔루션 중 뭘 더 원하냐면, 솔루션 쪽으로 확 기운다. 조직 규모가 크지 않다 보니 분석에서 나오는 문제나 병목, 리스크 요인이라는 게 사실상 다 창업자의 선택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몰라서 그런 선택을 한 게 아니라 철학일 수도 있고, 개인적 이해관계일 수도 있고, 그냥 고집이거나 오래된 관행일 수도 있다.
즉 창업자 입장에서 분석 내용이라는 건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던, 혹은 알고 싶지 않았던 얘기의 재확인일 뿐이다. 그러니 그게 문제라는, 혹은 개선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분석 결과를 다시 받으면 당연히 불편하고 싫다. 안 그래도 내부외부에서 이런저런 잔소리 듣던 참인데, 돈까지 주고 받은 컨설팅 리포트마저 같은 얘기를 반복한다면 유쾌할 리가 없다.
그렇다고 그 리포트를 그냥 서랍에 넣어버리기도 쉽지 않다. 돈 주고 산 결과물이라는 사실 자체가 부담으로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부담은 곧 다른 걱정으로 옮겨간다. 혹시라도 이 리포트가 회사 안에서 돌아다니다가, 평소 자신에게 불만이 있던 직원이나 다른 리더들 손에 들어가서 자신을 흔드는 무기로 쓰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그래서 리포트는 조용히 요약본만 공유되거나, 문제의 원인 부분은 살짝 뭉개진 채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어떤 경우엔 컨설팅 결과 자체를 극소수 임원진만 열람할 수 있게 접근권한을 걸어두기도 하는데, 정작 그 문제로 가장 크게 영향받는 실무진은 리포트 존재조차 모르고 지나가는 상황도 생긴다.
결국 사람 문제라서 못 건드린다
그런데 여기엔 좀 더 근본적인 이유도 하나 깔려있다. 분석에서 나온 이슈가 시스템이나 프로세스 문제라면 그나마 손대기 쉽다. 근데 스타트업에서 나오는 이슈는 대개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이 지점이 레거시 그룹과 스타트업이 진짜로 갈라지는 부분이다. 레거시 그룹은 어떤 사람을 대체해도 그 사람을 받쳐주던 프로세스와 시스템이 남아있다. 그러니 사람이 바뀌어도 조직은 어느 정도 굴러간다. 근데 스타트업은 그 사람이 곧 시스템인 경우가 많다. 그 사람을 빼면 대체할 인력을 새로 구해야 하는데, 채용 코스트도 만만치 않고, 무엇보다 그 새 인력이 지금 사람만큼 해낼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심지어 분석 결과가 그 사람을 이슈의 원인으로 딱 짚어냈다 해도 마찬가지다. 알면서도 못 건드리는 거다.
그리고 사람 문제라는 게 결국 감정의 영역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정리하거나 역할을 바꾼다는 건 곧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고, 창업자 입장에서는 그 역할을 맡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그 대상이 초기 멤버일 확률이 높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회사 초창기부터 같이 구르며 정도 들고 서로의 사정도 잘 아는 사이인데, 그 관계를 깨는 결정을 하기란 데이터 몇 장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창업자가 진짜 원하는 건 지금 나온 이슈사항은 최대한 안 건드리거나 본인이 불편하지 않은 일부만 살짝 건드리면서 회사가 극적으로 바뀌는 그런 솔루션이다. HR 쪽이면 갑자기 직원들이 몰입도가 확 올라가거나 조직 밀도가 높아지는 그림, 마케팅이면 성과가 껑충 뛰는 그림, AX면 생산성이 갑자기 튀는 그림. 문제는 이런 솔루션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핵심 이슈나 장애요인을 건드려야 하는데, 그게 대개 대표 본인이나 초기 멤버와 얽혀있다 보니 컨설팅 결과가 유의미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결국 몸에 좋은 쓴 약은 빼고 겉보기에만 화려한 영양제 몇 알 처방받은 셈인데, 그마저도 안 하는 것보단 낫다고 서로 위안 삼는 게 이 바닥의 슬픈 현실이기도 하다.
결국 컨설팅펌도 이 게임의 룰을 알고 들어온다
컨설팅이 내부 직원으로 일하는 것보다 편한 지점 하나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클라이언트인 대표가 원하는 건 어디까지나 결과물이고, 그걸 실제로 실행하고 운영하는 몫은 결국 내부 직원한테 넘어간다.
그리고 컨설팅펌들도 바보가 아니다. 레거시 그룹에서는 분석이 명분으로 쓰인다는 걸 알고 그 명분을 정교하게 다듬어주고, 스타트업에서는 솔루션이 극적인 그림으로 소비된다는 걸 알고 그 그림을 그럴싸하게 그려준다. 딱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그 지점까지만 해주면 영업도 되고 프로젝트도 무사히 끝난다. 문제의 뿌리는 건드리지 않은 채로.
여기엔 조금 냉소적인 이유도 하나 숨어있다. 진짜 근본 원인까지 손대서 회사를 확 바꿔버리면, 다음 프로젝트가 안 들어온다. 컨설팅펌 입장에서는 클라이언트가 매년, 혹은 몇 년마다 재계약해줘야 사업이 굴러가는데,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버리면 재구매 이유가 사라진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개선되지만 완전히는 안 끝나는, 딱 다음 시즌에 또 컨설팅을 부를 수 있을 만큼의 솔루션이 나오는 경우도 은근히 있다. 병 주고 약 주고를 여러 회차에 걸쳐 반복하는 셈인데, 이게 의도적인 전략인지 그냥 구조가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결과인지는 컨설팅펌 본인들도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울 거다.
그리고 이게 또 내부 직원들이 컨설팅을 별로 안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겉만 그럴싸하게 정리된 리포트를 들고 와서, 실행은 결국 우리 몫으로 남는 상황을 여러 번 겪어봤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답을 찾고 있는 걸까, 허락을 구하고 있는 걸까
이 글을 쓰면서도 좀 찔리는 구석이 있다. 나도 HR 자문이라는 이름으로 이 게임 어딘가에 껴있는 사람이니까. 클라이언트가 듣고 싶은 얘기와 들어야 하는 얘기 사이에서 나도 매번 어느 쪽에 무게를 실을지 고민한다. 그러니 이 글은 컨설팅펌을 탓하려는 글이라기보다, 나 자신한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물론 다르게 접근하는 곳들도 있다. 분석 결과가 불편해도 일단 끝까지 들어보겠다는 경영진, 솔루션이 화려하지 않아도 근본 원인부터 짚어달라고 먼저 요청하는 창업자. 이런 케이스들은 확실히 드물지만, 없는 건 아니다. 결국 컨설팅의 질을 결정하는 건 컨설턴트의 실력보다 클라이언트가 얼마나 불편한 진실을 견딜 준비가 되어있는가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컨설팅이 파는 게 진짜 분석인지 솔루션인지는 사실 회사가 뭘 원하는지에 달려있다기보다, 회사가 뭘 원하지 않는지에 달려있는 게 아닐까 싶다. 명분이 필요한 곳은 진짜 원인은 보고 싶지 않은 거고, 극적인 그림이 필요한 곳도 결국 진짜 원인은 건드리고 싶지 않은 거니까. 그렇다면 다음에 컨설팅 리포트를 받아들 때 스스로한테 한번 물어볼 만하다. 나는 지금 답을 찾으려는 걸까, 아니면 이미 정한 답에 대한 허락을 구하려는 걸까.

컨설팅 얘기가 나오면 다들 프레임워크부터 떠올린다. 2x2 매트릭스에 그럴싸한 영어 이름 붙이고, 시장분석 하고, 대상분석 하고, 마지막에 솔루션 내놓는 그 익숙한 흐름. 유명한 전략 컨설팅펌들은 저마다의 방법론이 있고, 그 방법론이라는 게 결국 시장과 클라이언트를 좀 더 정교하게 뜯어보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어떤 특정 방법론이 좋다 나쁘다를 얘기하려는 건 아니고.
분석도 중요하고 솔루션도 중요하다는 건 다들 안다. 시장이랑 클라이언트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분석 없이는 솔루션도 제대로 나오기 힘들다. 그리고 이 분석이라는 작업 자체가 내부 사람은 하기 어려운 영역이라 외부 시선이 필요하기도 하다. 솔루션도 마찬가지로 그동안의 고민, 경험, 글로벌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나온다. 여기까지는 다들 아는 원론. 근데 좀 다른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클라이언트는 정말 뭘 원할까. 분석일까 솔루션일까.
덩치 큰 회사들이 유독 분석에 목매는 이유
먼저 규모도 크고 비즈니스모델도 안정적인 중견기업 이상을 한 그룹으로 묶어보자. 이런 곳들은 컨설팅을 자주 받긴 받는데, 주로 전략 컨설팅 쪽이다. HR 컨설팅도 하긴 하지만 나 같은 자문 형태보다는 좀 더 전략컨설팅스러운, 그러니까 각 잡힌 보고서가 나오는 제도 컨설팅이 대부분이다.
이 그룹에서 재밌는 지점은, 분석과 솔루션 중에 유독 분석에 더 힘을 준다는 거다. 왜냐면 솔루션은 사실 자기들도 이미 고민해본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런 회사 전략/기획 직원들도 만만치 않게 똑똑하고, 컨설팅 출신들도 수두룩하다. 게다가 매일 그 사업을 직접 굴리는 사람들이니 솔루션에 대해서는 오히려 컨설턴트보다 더 잘 알 수도 있다. 다만 여러 사정으로 그걸 실행에 못 옮기고 있을 뿐. 회의 몇 번만 들어가 봐도 답은 이미 나와 있는데, 그걸 실제로 밀어붙이려면 누군가는 부딪히고 누군가는 손해를 봐야 하니 다들 알면서도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 흔하다.
그러면 왜 분석이 더 중요해지느냐. 여기서 분석 리포트는 사실 순수한 진단서라기보다 명분에 가깝다. 대표나 경영진이 이미 마음속으로 정한 방향, 정리하고 싶은 부서나 사람, 밀어붙이고 싶은 신사업 같은 것들을 실행할 때 필요한 근거로 쓰인다는 얘기다. 분석이라는 게 결국 리포트인지라,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정보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눈치 빠르고 영업 잘하는 시니어 PM들은 이걸 안다. 그래서 프로젝트 초반에 대표나 경영진과 몇 번 티타임을 갖거나 킥오프 미팅을 하면서, 이번 컨설팅으로 어떤 결론이 나오면 좋을지 은근히 감을 잡아둔다. 그리고 분석의 뼈대와 톤을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맞춰간다. 인터뷰 대상자를 누구로 할지, 어떤 데이터를 더 파고들지, 심지어 설문 문항을 어떻게 설계할지까지도 이미 그 결론을 향해 은근히 정렬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분석이 진짜 발견의 도구라기보다, 이미 정해진 결론에 힘을 실어주는 절차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이게 나쁘다고만 볼 수도 없는 게, 조직이 크다는 건 그만큼 이해관계자도 많고 저항도 크다는 뜻이라, 외부 컨설팅이라는 권위 있는 이름을 빌려야만 겨우 움직이는 관성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선 이 분석이라는 절차 자체가 조직 내 갈등을 완충시켜주는 정치적 쿠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스타트업은 반대로, 다 아는 얘기를 다시 듣기 싫어한다
이번엔 아직 궤도에 오르지 않은 스타트업 그룹을 보자. 여긴 완전히 반대다. 일단 전략 컨설팅 자체를 잘 받지 않는다. 비싸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창업자의 인사이트와 실행 의지를 컨설팅펌이 따라잡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컨설팅 회사가 지식은 많을지 몰라도 0에서 1을 만들어내는 건 다른 얘기고, 합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그 고집과 추진력이 결국 창업이라는 걸 만들어낸 거니까.
그래서 스타트업이 받는 컨설팅은 대개 HR이나 마케팅, 요즘이면 AX 같은 특정 스킬 영역에 몰려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분석과 솔루션 중 뭘 더 원하냐면, 솔루션 쪽으로 확 기운다. 조직 규모가 크지 않다 보니 분석에서 나오는 문제나 병목, 리스크 요인이라는 게 사실상 다 창업자의 선택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몰라서 그런 선택을 한 게 아니라 철학일 수도 있고, 개인적 이해관계일 수도 있고, 그냥 고집이거나 오래된 관행일 수도 있다.
즉 창업자 입장에서 분석 내용이라는 건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던, 혹은 알고 싶지 않았던 얘기의 재확인일 뿐이다. 그러니 그게 문제라는, 혹은 개선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분석 결과를 다시 받으면 당연히 불편하고 싫다. 안 그래도 내부외부에서 이런저런 잔소리 듣던 참인데, 돈까지 주고 받은 컨설팅 리포트마저 같은 얘기를 반복한다면 유쾌할 리가 없다.
그렇다고 그 리포트를 그냥 서랍에 넣어버리기도 쉽지 않다. 돈 주고 산 결과물이라는 사실 자체가 부담으로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부담은 곧 다른 걱정으로 옮겨간다. 혹시라도 이 리포트가 회사 안에서 돌아다니다가, 평소 자신에게 불만이 있던 직원이나 다른 리더들 손에 들어가서 자신을 흔드는 무기로 쓰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그래서 리포트는 조용히 요약본만 공유되거나, 문제의 원인 부분은 살짝 뭉개진 채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어떤 경우엔 컨설팅 결과 자체를 극소수 임원진만 열람할 수 있게 접근권한을 걸어두기도 하는데, 정작 그 문제로 가장 크게 영향받는 실무진은 리포트 존재조차 모르고 지나가는 상황도 생긴다.
결국 사람 문제라서 못 건드린다
그런데 여기엔 좀 더 근본적인 이유도 하나 깔려있다. 분석에서 나온 이슈가 시스템이나 프로세스 문제라면 그나마 손대기 쉽다. 근데 스타트업에서 나오는 이슈는 대개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이 지점이 레거시 그룹과 스타트업이 진짜로 갈라지는 부분이다. 레거시 그룹은 어떤 사람을 대체해도 그 사람을 받쳐주던 프로세스와 시스템이 남아있다. 그러니 사람이 바뀌어도 조직은 어느 정도 굴러간다. 근데 스타트업은 그 사람이 곧 시스템인 경우가 많다. 그 사람을 빼면 대체할 인력을 새로 구해야 하는데, 채용 코스트도 만만치 않고, 무엇보다 그 새 인력이 지금 사람만큼 해낼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심지어 분석 결과가 그 사람을 이슈의 원인으로 딱 짚어냈다 해도 마찬가지다. 알면서도 못 건드리는 거다.
그리고 사람 문제라는 게 결국 감정의 영역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정리하거나 역할을 바꾼다는 건 곧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고, 창업자 입장에서는 그 역할을 맡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그 대상이 초기 멤버일 확률이 높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회사 초창기부터 같이 구르며 정도 들고 서로의 사정도 잘 아는 사이인데, 그 관계를 깨는 결정을 하기란 데이터 몇 장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창업자가 진짜 원하는 건 지금 나온 이슈사항은 최대한 안 건드리거나 본인이 불편하지 않은 일부만 살짝 건드리면서 회사가 극적으로 바뀌는 그런 솔루션이다. HR 쪽이면 갑자기 직원들이 몰입도가 확 올라가거나 조직 밀도가 높아지는 그림, 마케팅이면 성과가 껑충 뛰는 그림, AX면 생산성이 갑자기 튀는 그림. 문제는 이런 솔루션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핵심 이슈나 장애요인을 건드려야 하는데, 그게 대개 대표 본인이나 초기 멤버와 얽혀있다 보니 컨설팅 결과가 유의미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결국 몸에 좋은 쓴 약은 빼고 겉보기에만 화려한 영양제 몇 알 처방받은 셈인데, 그마저도 안 하는 것보단 낫다고 서로 위안 삼는 게 이 바닥의 슬픈 현실이기도 하다.
결국 컨설팅펌도 이 게임의 룰을 알고 들어온다
컨설팅이 내부 직원으로 일하는 것보다 편한 지점 하나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클라이언트인 대표가 원하는 건 어디까지나 결과물이고, 그걸 실제로 실행하고 운영하는 몫은 결국 내부 직원한테 넘어간다.
그리고 컨설팅펌들도 바보가 아니다. 레거시 그룹에서는 분석이 명분으로 쓰인다는 걸 알고 그 명분을 정교하게 다듬어주고, 스타트업에서는 솔루션이 극적인 그림으로 소비된다는 걸 알고 그 그림을 그럴싸하게 그려준다. 딱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그 지점까지만 해주면 영업도 되고 프로젝트도 무사히 끝난다. 문제의 뿌리는 건드리지 않은 채로.
여기엔 조금 냉소적인 이유도 하나 숨어있다. 진짜 근본 원인까지 손대서 회사를 확 바꿔버리면, 다음 프로젝트가 안 들어온다. 컨설팅펌 입장에서는 클라이언트가 매년, 혹은 몇 년마다 재계약해줘야 사업이 굴러가는데,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버리면 재구매 이유가 사라진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개선되지만 완전히는 안 끝나는, 딱 다음 시즌에 또 컨설팅을 부를 수 있을 만큼의 솔루션이 나오는 경우도 은근히 있다. 병 주고 약 주고를 여러 회차에 걸쳐 반복하는 셈인데, 이게 의도적인 전략인지 그냥 구조가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결과인지는 컨설팅펌 본인들도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울 거다.
그리고 이게 또 내부 직원들이 컨설팅을 별로 안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겉만 그럴싸하게 정리된 리포트를 들고 와서, 실행은 결국 우리 몫으로 남는 상황을 여러 번 겪어봤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답을 찾고 있는 걸까, 허락을 구하고 있는 걸까
이 글을 쓰면서도 좀 찔리는 구석이 있다. 나도 HR 자문이라는 이름으로 이 게임 어딘가에 껴있는 사람이니까. 클라이언트가 듣고 싶은 얘기와 들어야 하는 얘기 사이에서 나도 매번 어느 쪽에 무게를 실을지 고민한다. 그러니 이 글은 컨설팅펌을 탓하려는 글이라기보다, 나 자신한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물론 다르게 접근하는 곳들도 있다. 분석 결과가 불편해도 일단 끝까지 들어보겠다는 경영진, 솔루션이 화려하지 않아도 근본 원인부터 짚어달라고 먼저 요청하는 창업자. 이런 케이스들은 확실히 드물지만, 없는 건 아니다. 결국 컨설팅의 질을 결정하는 건 컨설턴트의 실력보다 클라이언트가 얼마나 불편한 진실을 견딜 준비가 되어있는가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컨설팅이 파는 게 진짜 분석인지 솔루션인지는 사실 회사가 뭘 원하는지에 달려있다기보다, 회사가 뭘 원하지 않는지에 달려있는 게 아닐까 싶다. 명분이 필요한 곳은 진짜 원인은 보고 싶지 않은 거고, 극적인 그림이 필요한 곳도 결국 진짜 원인은 건드리고 싶지 않은 거니까. 그렇다면 다음에 컨설팅 리포트를 받아들 때 스스로한테 한번 물어볼 만하다. 나는 지금 답을 찾으려는 걸까, 아니면 이미 정한 답에 대한 허락을 구하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