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스타트업 성장 중독 : 병? 동기부여?' 에서 성장 중독 얘기를 했었다. 텐션이 낮아지면 왜 그렇게 불안해지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쓰고 나서도 뭔가 하나가 계속 걸렸다. 정작 그 불안이라는 게 정확히 뭔지는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았다는 느낌.
돌이켜보면 나도 실무자였을 때는 이런 종류의 불안을 몰랐다고 생각했다.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도 착각이었다. 몰랐던 게 아니라 다른 형태로 있었던 거다. 위에서 방향이 아침저녁으로 바뀌어도 나는 그냥 오늘 할 일만 쳐내면 됐지만, 그 와중에도 늘 어딘가 불안했다. 지금 이 속도가 맞는 건지, 남들은 더 빠른 곳에서 더 잘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종류의 불안. 그리고 어느 순간 직책이 생기고부터는 그 위에 또 다른 불안이 얹혔다.
그때는 이게 다 그냥 하나의 불안이라고 뭉뚱그려 생각했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결이 완전히 다른 불안들이 겹쳐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하나는 예전부터 계속 있었던 거였고, 다른 하나는 직책이 생기면서 새로 붙은 거였다. 둘을 따로 떼어놓고 보니까 그제서야 좀 선명해졌다. 결국 이 불안들은 대부분 내가 어디서 왔고 지금 어디 서 있느냐, 그 차이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속도의 문제
세상은 대략 시속 50km 정도로 흘러간다고 치자. 스타트업은 그보다 좀 빠른 70km. 그리고 도파민이 팍팍 터지는 곳, 그러니까 투자유치 직후라거나 시리즈 B가 막 터졌다거나 매출이 매달 두 배씩 뛰는 조직은 100km쯤 된다고 해보자.
숫자로만 보면 그냥 단순 비교처럼 보인다. 50보다 70이 빠르고, 70보다 100이 빠르다 정도. 근데 사람이 불안을 느끼는 건 절대속도가 아니라 상대속도다. 고속도로에서 100km로 달리다가 국도로 빠져서 70km로 줄이면, 분명 시속 70km는 정상적인 속도인데도 순간적으로 너무 느리게 느껴져서 오히려 위험하게 느껴진 경험 다들 있을 거다. 반대로 70km로만 달리던 사람한테는 그 70km가 원래 기준점이라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얼마나 불안한지는 세상이 몇 km인지랑은 사실 큰 상관이 없다. 내가 어디서 왔고, 지금 어디 서 있는지에 달려 있다. 100에 있다가 70로 온 사람의 체감 낙차는 -30이고, 70에 있다가 50으로 온 사람의 체감 낙차는 -20이다. 숫자는 작아 보여도 몸이 느끼는 건 그 차이 자체다. 재밌는 건 이 계산이 한 방향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거다. 50에 있다가 70로 온 사람은 반대로 +20의 낙차를 느끼고, 그건 불안이 아니라 오히려 활력이나 재미로 느껴진다. 그러니까 같은 상대속도 개념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감정을 만들어내는 셈이다.
그리고 이 기준점이라는 게 혼자 왜곡되는 게 아니다. 활황기에는 주변도, 언론도 다 같이 분위기를 만든다. 주식이나 코인 상승장 때를 떠올려보면 쉬운데, 그 시기엔 다들 아무거나 사도 오른다는 분위기고 안 하는 사람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스타트업 성장기도 비슷하다. 투자가 잘 붙고 조직이 매달 커지는 시기엔 이 속도가 마치 세상의 기본값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 안에 있는 동안은 세상이 원래 50km로 흘러간다는 감각 자체를 잊어버리는 거다. 그러니까 국도로 나오는 순간 낙차가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재밌는 건 이 기준점이 한 번 높아지고 나면 몸이 그 속도에 맞춰져버려서, 정상적인 속도로 돌아와도 뭔가 잘못됐다는 신호로 착각하게 된다는 거다.
도파민은 왜 하필 불안정한 곳에서 터지는가
근데 여기서 하나 더 생각해볼 게 있다. 왜 굳이 100km짜리 도파민존을 사람들이 찾아가려고 하는가.
도파민이라는 게 사실 안정적인 곳에서는 잘 안 터진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고 예측 가능한 하루에서는 뇌가 딱히 긴장할 이유가 없다. 반대로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뇌가 계속 각성 상태를 유지한다. 그러니까 도파민의 재료는 성과가 아니라 불안정성 그 자체다.
근데 실무자 입장에서 이게 참 헷갈리는 지점이 있다. 지금 있는 조직 안에서 나름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도, 그 안에서조차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거다. 지금 이 속도가 맞는 건지, 다른 데는 더 빠르게 잘 나가고 있는 건 아닌지 계속 신경이 쓰인다. 그러다 실제로 더 빠른 곳, 혹은 더 느린 곳으로 옮겨가면 오히려 불안이 더 커진다. 어느 쪽이 정상인지 기준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게 꼭 주식판에서 벌어지는 일이랑 닮았다. 실제로 큰 수익을 낸 사람은 소수인데, 마치 그게 당연히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결과인 것처럼 여겨진다. 성공한 소수의 얘기만 계속 들리고 조용히 잃은 다수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으니까, 나만 뒤처진 것 같고 나만 잘못된 판단을 한 것 같은 착각이 생긴다.
스타트업 도파민존도 똑같다. 100km로 달려서 성공한 소수의 이야기만 눈에 띄고, 그 안에서 소진되거나 조용히 나가떨어진 다수는 이야기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실무자는 어느 속도에 있든 늘 자기 위치가 맞는지 의심하게 되는 거고, 이 의심 자체도 사실은 상대속도가 만든 또 하나의 착시다.
여기에 하나 더 무서운 게 있다. 운 좋게 이 불안정성을 견뎌서 성공까지 만들어낸 적이 있다면, 그 이후로는 계속 같은 짜릿함을 쫓게 된다는 거다. 주식이나 코인을 초창기에 운 좋게 크게 먹어본 사람이 그 이후로 평생 그 낮은 확률을 다시 쫓아다니는 것과 비슷하다. 도박까지 비교하긴 좀 그렇지만, 구조는 비슷하다. 상승장에서는 다들 낙관적이고 나만 안 하면 뒤처지는 것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지지만, 하락장이 오면 분위기는 완전히 비관적으로 바뀌는데도 이미 발을 담근 사람은 그 판을 쉽게 못 떠난다. 조직이 힘들어졌을 때 직원 입장에서 쉽게 못 떠나는 마음도 이와 비슷하다. 예전에 이 조직이 잘 나가는 걸 직접 봤던 사람일수록, 지금 힘들어도 다시 그때처럼 될 거라는 기대를 쉽게 놓지 못한다.
불안이 하나 더 늘어나는 순간
여기까지는 그래도 실무자 입장에서의 상대속도 얘기였다. 근데 직책이 생기면 이 위에 완전히 다른 종류의 불안이 하나 더 얹힌다.
속도를 조절하는 사람은 원래도, 직책을 맡은 이후에도 똑같이 대표다. 이 점은 안 바뀐다. 직책자도 결국 대표가 정한 속도에 맞춰야 하는 건 실무자 때랑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직책이 생긴다고 해서 갑자기 내가 속도를 정하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달라지는 건 다른 데 있다.
실무자일 땐 이 속도가 맞는지, 이 판단이 맞는지는 회사나 대표의 영역이라고 여기고 넘어갈 수 있었다. 나는 나한테 주어진 업무만 열심히 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매출이 왜 이렇게 나오는지, 이 속도를 유지할 재원이 있는지는 굳이 내가 들여다볼 이유가 없었다. 근데 직책이 생기면 이 영역이 보이기 시작한다. 재무 상황이 어떤지, 이 속도를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지, 다음 투자가 제때 들어올지 같은 것들이 이제는 내 눈에 들어온다.
이게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으로 다가오냐면, 예전엔 그냥 우리 팀 숫자만 보고 잘하고 있다 못하고 있다를 판단했다면, 이제는 그 숫자 옆에 런웨이가 몇 개월 남았는지, 이번 분기 결과가 다음 투자 유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같은 게 같이 보인다. 회의실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도 예전과 다르게 들린다. 예전엔 그냥 "다음 달까지 이 지표 맞춰봅시다"였던 게, 이제는 그 말 뒤에 깔린 재무적 압박까지 같이 읽히는 식이다. 그러면 앞서 말한 상대속도로 인한 막연한 불안 위에, 이번엔 훨씬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걱정이 더해진다. 그냥 속도가 빠르고 느리다는 감각적인 문제가 아니라, 이 속도를 유지할 실제 여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아는 데서 오는 불안이다.
그러니까 직책자가 된다고 상대속도의 불안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위에 경영적, 재무적 현실을 아는 데서 오는 불안이 겹으로 쌓인다. 실무자 때는 하나의 불안만 감당하면 됐는데, 직책자가 되면 두 겹의 불안을 동시에 짊어지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이 두 불안은 서로를 증폭시키기도 한다. 상대속도의 낙차가 클수록 예민해져 있는 상태에서, 현실적인 숫자까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원래는 따로 감당했을 두 개의 불안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착시였다
결국 불안이라는 건 절대적인 속도의 문제도 아니고, 단순히 성격이 예민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그 기준점이 얼마나 왜곡돼 있는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때 생기는 착시에 가깝다. 성장 중독이라는 것도 결국 이 착시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예전 속도를 기준점으로 착각하고, 그 기준점과 지금 사이의 낙차를 실제보다 훨씬 크게 느끼는 것, 그리고 소수의 성공 사례를 마치 보편적인 결과인 것처럼 여기고 나를 거기 견주는 것.
다만 여기서 하나는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상대속도가 만든 착시와, 직책자가 되면서 실제로 보이기 시작한 경영적 현실은 서로 다른 종류의 불안이라는 것. 전자는 착시라서 인식하면 상당 부분 해소되지만, 후자는 착시가 아니라 실체가 있는 문제라서 인식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이 둘을 뭉뚱그려서 그냥 "불안하다"로만 느끼면, 착시로 없앨 수 있는 불안까지 붙잡고 계속 소진된다.
재밌는 건 이 두 불안을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실제로 감당해야 할 무게가 확 줄어든다는 거다. 착시인 부분은 원래부터 실체가 없었으니 인식하는 순간 힘이 빠지고, 실체가 있는 부분만 남으면 그건 오히려 다루기가 쉬워진다. 막연하게 뭉쳐서 짊어지고 있을 때가 사실 제일 무겁다. 뭐가 착시고 뭐가 실체인지 모른 채로 그냥 다 내 탓, 내 능력 부족이라고 여기면 감당해야 할 것도 아닌데 계속 감당하려 드는 거고, 그게 소진의 진짜 이유일 때가 많다.
속도는 계속 바뀐다. 지금 70에 있어도 언젠가 50이나 100으로 옮겨갈 거고, 그때마다 또 낙차는 생길 거다. 그 낙차 자체를 없앨 방법은 없다. 다만 그게 착시인지 실체인지 한 번 걸러내는 습관만 있어도, 다음 낙차가 왔을 때는 지금보다는 덜 휘둘릴 수 있을 것 같다.

과거 '스타트업 성장 중독 : 병? 동기부여?' 에서 성장 중독 얘기를 했었다. 텐션이 낮아지면 왜 그렇게 불안해지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쓰고 나서도 뭔가 하나가 계속 걸렸다. 정작 그 불안이라는 게 정확히 뭔지는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았다는 느낌.
돌이켜보면 나도 실무자였을 때는 이런 종류의 불안을 몰랐다고 생각했다.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도 착각이었다. 몰랐던 게 아니라 다른 형태로 있었던 거다. 위에서 방향이 아침저녁으로 바뀌어도 나는 그냥 오늘 할 일만 쳐내면 됐지만, 그 와중에도 늘 어딘가 불안했다. 지금 이 속도가 맞는 건지, 남들은 더 빠른 곳에서 더 잘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종류의 불안. 그리고 어느 순간 직책이 생기고부터는 그 위에 또 다른 불안이 얹혔다.
그때는 이게 다 그냥 하나의 불안이라고 뭉뚱그려 생각했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결이 완전히 다른 불안들이 겹쳐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하나는 예전부터 계속 있었던 거였고, 다른 하나는 직책이 생기면서 새로 붙은 거였다. 둘을 따로 떼어놓고 보니까 그제서야 좀 선명해졌다. 결국 이 불안들은 대부분 내가 어디서 왔고 지금 어디 서 있느냐, 그 차이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속도의 문제
세상은 대략 시속 50km 정도로 흘러간다고 치자. 스타트업은 그보다 좀 빠른 70km. 그리고 도파민이 팍팍 터지는 곳, 그러니까 투자유치 직후라거나 시리즈 B가 막 터졌다거나 매출이 매달 두 배씩 뛰는 조직은 100km쯤 된다고 해보자.
숫자로만 보면 그냥 단순 비교처럼 보인다. 50보다 70이 빠르고, 70보다 100이 빠르다 정도. 근데 사람이 불안을 느끼는 건 절대속도가 아니라 상대속도다. 고속도로에서 100km로 달리다가 국도로 빠져서 70km로 줄이면, 분명 시속 70km는 정상적인 속도인데도 순간적으로 너무 느리게 느껴져서 오히려 위험하게 느껴진 경험 다들 있을 거다. 반대로 70km로만 달리던 사람한테는 그 70km가 원래 기준점이라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얼마나 불안한지는 세상이 몇 km인지랑은 사실 큰 상관이 없다. 내가 어디서 왔고, 지금 어디 서 있는지에 달려 있다. 100에 있다가 70로 온 사람의 체감 낙차는 -30이고, 70에 있다가 50으로 온 사람의 체감 낙차는 -20이다. 숫자는 작아 보여도 몸이 느끼는 건 그 차이 자체다. 재밌는 건 이 계산이 한 방향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거다. 50에 있다가 70로 온 사람은 반대로 +20의 낙차를 느끼고, 그건 불안이 아니라 오히려 활력이나 재미로 느껴진다. 그러니까 같은 상대속도 개념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감정을 만들어내는 셈이다.
그리고 이 기준점이라는 게 혼자 왜곡되는 게 아니다. 활황기에는 주변도, 언론도 다 같이 분위기를 만든다. 주식이나 코인 상승장 때를 떠올려보면 쉬운데, 그 시기엔 다들 아무거나 사도 오른다는 분위기고 안 하는 사람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스타트업 성장기도 비슷하다. 투자가 잘 붙고 조직이 매달 커지는 시기엔 이 속도가 마치 세상의 기본값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 안에 있는 동안은 세상이 원래 50km로 흘러간다는 감각 자체를 잊어버리는 거다. 그러니까 국도로 나오는 순간 낙차가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재밌는 건 이 기준점이 한 번 높아지고 나면 몸이 그 속도에 맞춰져버려서, 정상적인 속도로 돌아와도 뭔가 잘못됐다는 신호로 착각하게 된다는 거다.
도파민은 왜 하필 불안정한 곳에서 터지는가
근데 여기서 하나 더 생각해볼 게 있다. 왜 굳이 100km짜리 도파민존을 사람들이 찾아가려고 하는가.
도파민이라는 게 사실 안정적인 곳에서는 잘 안 터진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고 예측 가능한 하루에서는 뇌가 딱히 긴장할 이유가 없다. 반대로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뇌가 계속 각성 상태를 유지한다. 그러니까 도파민의 재료는 성과가 아니라 불안정성 그 자체다.
근데 실무자 입장에서 이게 참 헷갈리는 지점이 있다. 지금 있는 조직 안에서 나름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도, 그 안에서조차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거다. 지금 이 속도가 맞는 건지, 다른 데는 더 빠르게 잘 나가고 있는 건 아닌지 계속 신경이 쓰인다. 그러다 실제로 더 빠른 곳, 혹은 더 느린 곳으로 옮겨가면 오히려 불안이 더 커진다. 어느 쪽이 정상인지 기준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게 꼭 주식판에서 벌어지는 일이랑 닮았다. 실제로 큰 수익을 낸 사람은 소수인데, 마치 그게 당연히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결과인 것처럼 여겨진다. 성공한 소수의 얘기만 계속 들리고 조용히 잃은 다수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으니까, 나만 뒤처진 것 같고 나만 잘못된 판단을 한 것 같은 착각이 생긴다.
스타트업 도파민존도 똑같다. 100km로 달려서 성공한 소수의 이야기만 눈에 띄고, 그 안에서 소진되거나 조용히 나가떨어진 다수는 이야기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실무자는 어느 속도에 있든 늘 자기 위치가 맞는지 의심하게 되는 거고, 이 의심 자체도 사실은 상대속도가 만든 또 하나의 착시다.
여기에 하나 더 무서운 게 있다. 운 좋게 이 불안정성을 견뎌서 성공까지 만들어낸 적이 있다면, 그 이후로는 계속 같은 짜릿함을 쫓게 된다는 거다. 주식이나 코인을 초창기에 운 좋게 크게 먹어본 사람이 그 이후로 평생 그 낮은 확률을 다시 쫓아다니는 것과 비슷하다. 도박까지 비교하긴 좀 그렇지만, 구조는 비슷하다. 상승장에서는 다들 낙관적이고 나만 안 하면 뒤처지는 것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지지만, 하락장이 오면 분위기는 완전히 비관적으로 바뀌는데도 이미 발을 담근 사람은 그 판을 쉽게 못 떠난다. 조직이 힘들어졌을 때 직원 입장에서 쉽게 못 떠나는 마음도 이와 비슷하다. 예전에 이 조직이 잘 나가는 걸 직접 봤던 사람일수록, 지금 힘들어도 다시 그때처럼 될 거라는 기대를 쉽게 놓지 못한다.
불안이 하나 더 늘어나는 순간
여기까지는 그래도 실무자 입장에서의 상대속도 얘기였다. 근데 직책이 생기면 이 위에 완전히 다른 종류의 불안이 하나 더 얹힌다.
속도를 조절하는 사람은 원래도, 직책을 맡은 이후에도 똑같이 대표다. 이 점은 안 바뀐다. 직책자도 결국 대표가 정한 속도에 맞춰야 하는 건 실무자 때랑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직책이 생긴다고 해서 갑자기 내가 속도를 정하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달라지는 건 다른 데 있다.
실무자일 땐 이 속도가 맞는지, 이 판단이 맞는지는 회사나 대표의 영역이라고 여기고 넘어갈 수 있었다. 나는 나한테 주어진 업무만 열심히 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매출이 왜 이렇게 나오는지, 이 속도를 유지할 재원이 있는지는 굳이 내가 들여다볼 이유가 없었다. 근데 직책이 생기면 이 영역이 보이기 시작한다. 재무 상황이 어떤지, 이 속도를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지, 다음 투자가 제때 들어올지 같은 것들이 이제는 내 눈에 들어온다.
이게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으로 다가오냐면, 예전엔 그냥 우리 팀 숫자만 보고 잘하고 있다 못하고 있다를 판단했다면, 이제는 그 숫자 옆에 런웨이가 몇 개월 남았는지, 이번 분기 결과가 다음 투자 유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같은 게 같이 보인다. 회의실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도 예전과 다르게 들린다. 예전엔 그냥 "다음 달까지 이 지표 맞춰봅시다"였던 게, 이제는 그 말 뒤에 깔린 재무적 압박까지 같이 읽히는 식이다. 그러면 앞서 말한 상대속도로 인한 막연한 불안 위에, 이번엔 훨씬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걱정이 더해진다. 그냥 속도가 빠르고 느리다는 감각적인 문제가 아니라, 이 속도를 유지할 실제 여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아는 데서 오는 불안이다.
그러니까 직책자가 된다고 상대속도의 불안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위에 경영적, 재무적 현실을 아는 데서 오는 불안이 겹으로 쌓인다. 실무자 때는 하나의 불안만 감당하면 됐는데, 직책자가 되면 두 겹의 불안을 동시에 짊어지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이 두 불안은 서로를 증폭시키기도 한다. 상대속도의 낙차가 클수록 예민해져 있는 상태에서, 현실적인 숫자까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원래는 따로 감당했을 두 개의 불안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착시였다
결국 불안이라는 건 절대적인 속도의 문제도 아니고, 단순히 성격이 예민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그 기준점이 얼마나 왜곡돼 있는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때 생기는 착시에 가깝다. 성장 중독이라는 것도 결국 이 착시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예전 속도를 기준점으로 착각하고, 그 기준점과 지금 사이의 낙차를 실제보다 훨씬 크게 느끼는 것, 그리고 소수의 성공 사례를 마치 보편적인 결과인 것처럼 여기고 나를 거기 견주는 것.
다만 여기서 하나는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상대속도가 만든 착시와, 직책자가 되면서 실제로 보이기 시작한 경영적 현실은 서로 다른 종류의 불안이라는 것. 전자는 착시라서 인식하면 상당 부분 해소되지만, 후자는 착시가 아니라 실체가 있는 문제라서 인식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이 둘을 뭉뚱그려서 그냥 "불안하다"로만 느끼면, 착시로 없앨 수 있는 불안까지 붙잡고 계속 소진된다.
재밌는 건 이 두 불안을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실제로 감당해야 할 무게가 확 줄어든다는 거다. 착시인 부분은 원래부터 실체가 없었으니 인식하는 순간 힘이 빠지고, 실체가 있는 부분만 남으면 그건 오히려 다루기가 쉬워진다. 막연하게 뭉쳐서 짊어지고 있을 때가 사실 제일 무겁다. 뭐가 착시고 뭐가 실체인지 모른 채로 그냥 다 내 탓, 내 능력 부족이라고 여기면 감당해야 할 것도 아닌데 계속 감당하려 드는 거고, 그게 소진의 진짜 이유일 때가 많다.
속도는 계속 바뀐다. 지금 70에 있어도 언젠가 50이나 100으로 옮겨갈 거고, 그때마다 또 낙차는 생길 거다. 그 낙차 자체를 없앨 방법은 없다. 다만 그게 착시인지 실체인지 한 번 걸러내는 습관만 있어도, 다음 낙차가 왔을 때는 지금보다는 덜 휘둘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