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444] "HR에 정답은 없습니다" 라는 말에 관하여 (EDGE 6기. 고용일)

고용일
2026-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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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 담당자로서 철학자 칼 포퍼의 사상을 접해보길 추천하고 싶다. 

HR관련 사례 강의의 말미에 발표자들이 "정답은 없습니다. 각자 조직에 맞춰서 제도를 발전시켜 가야합니다." 라는, 조금은 김빠지는 

말들과 닮아있지만 말이다. 

100명의 구성원이 있는 조직이라면 100가지의 답이 존재하는 "초개인화" 시대이기에 더더욱. 



철학자 칼 포퍼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이라는 책을 저술했다. 열린 사회를 지향하는 그에게 적은 "닫힌 사회" 다. 

여기서 "닫힌 사회" 란 무지막지한 독재 국가 만을 말하지 않는다. 

무언가 "옳은 것이 있다" 라는 전제 또는 도그마라면 모두 열린 사회의 적이라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 그가 책에서 지적하고자 했던 바다. 

그가 가장 타깃으로 삼는 철학자를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를 들 수 있다. 

거칠게 말해 이 세 명의 철학자는 각각 철인정치, 변증법적 유물론, 역사발전 5단계설이라는 "모범답안" 을 제시한다. 

모범 답안은 "~~해야 한다" 혹은 "~~하게 되어 있다" 라는 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플라톤은 영적, 지적으로 완벽한 철인만이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고 말했다. 

헤겔은 역사란 "정(正)"과 "반(反)"이 만나 "합(合)" 의 형태로 발전하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노동자 계급)에 의해 자본가 계급은 소멸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해 우리 사회가 "원시 공산사회"와

비슷한 형태로 발전하게 되어 있다고 했다. 

우리가 알다시피 현실이 꼭 위에 말한 사람들의 모범답안 처럼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직장인 경력개발 고민을 다루는 워크숍엘 다녀왔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고민을 말하지만 공통된 키워드들이 있었다. 

"제가 뭘 잘하는지 모르겠어요" , "아직도 제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 "제가 원하는게 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등이다. 

어떻게 하면 그것들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하나의 지점을 참가자들이 향하고 있었다. 

잘 하는 것,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 그런 일. 

이런 것들이 과연 경력개발의 "모범답안" 일까? 하는 현타의 순간이 찾아왔다. 

그러던 중, 어느 경력개발 전문가 분의 말씀이 떠올랐다. 

"좋아하는 일을 찾지 말고, 정해 보세요" 

그래서 떠올린 것이 CDP 였다. Career Development Program 이 아니라 Career Drift Program 말이다. 

경력을 꼭 "개발" 해가야만 할까? 개발이라 함은 뭔가 하나의 방향, 하나의 직선으로 이루어진 느낌이 든다. 

"온전한 나" 라는 어딘가 있을 유토피아를 찾아 헤매는 여정과 같이 말이다. 

"개발하지 말고 그냥 표류(Drift)하면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그랬다. 인생은 끝없이 내 앞에 놓여있는 문들의 연속과 같다고, 인생은 그 문을 죽는 날까지 열어 제끼는 여정과도 

같다고 말이다.  

잘못 들 수도 있고, 어떨 땐 예쁜 꽃길에 들 수도 있는 그런 것. 그런 것이 경력의 여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 인권 조례가 생기고, 변별력을 갖추기 위한 최첨단의 학제가 생기고, 무수히 많은 전형과 전문가들이 대입 전형에 

투입되는 시대다. 

머지 않아 AI 가 대입 전형에 포함될 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촘촘히 설계된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은 설계도를 찾고, 설계도의 구조와 의미를 해석하는 데에 전문가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런 학생들은 점점 더, 아니 지금도 많이 우리 조직에 유입되고 있다. 

아무튼, 이런 빡센 학창 시절을 보내고 조직에 입성한 구성원들 또한 설계도를 원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면 설계도가 명확히 그려져 있지 않은 일에는 당황스러워 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인간관계 문제나 회색 지대에 놓여있는 업무 분장과 같은 것들 말이다. 

나를 포함한  MBTI "J" 유형인 분들에게 대단히 송구스런 말씀이오나 이럴 땐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춰 나가는 것" 만이 답이다.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잔뜩 우수 사례를 소개해 놓고선 "정답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조직에 맞는 것을 찾아가는 것만이 답입니다" 라는 

허무한 엔딩 멘트를 말이다. 

HR제도에 확신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이것이 조직의 대외 적응 및 대내적 최적화, 주주/고객/구성원 들의 성장에 기여한다면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을 만들어 가는 것만이 최선이 아닐까? 


칼 포퍼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면 그는 "점진적 사회공학" 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한 가지의 대안을 제시하면서 "하나의 대안이 있다" 고 말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이 모순처럼 보이긴 하지만, 

무튼 그는 알 수 없는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때 그 때 당면한 문제들에 대응하고, 보완하고

적응해 가는 것이 최선이고 그 과정 자체가 답이라고 본다. 

린 스타트업들의 애자일 방식이 떠오르는 대목인데 도대체 칼 포퍼는 몇 수 앞을 내다본 것인지 모르겠다.   


- by 흡수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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