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ES 업데이트: 2026.03.31
사내 메신저에 쓰이지 않는 문장들
매주 화요일 오전, 조직문화 탐방기로 말하지 못한 규칙을 번역합니다.
EP. 6 휴스턴, 문제가 생겼다: 방임의 늪과 통제의 감옥 사이에서 안전망 짜기
【우주 한복판에서 던진 가장 투명한 보고】
1970년 4월, 달을 향해 날아가던 아폴로 13호의 산소 탱크가 우주 한복판에서 굉음과 함께 터졌습니다. 전력은 끊기고 산소는 급격히 바닥을 위협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죠. 보통 사람이라면 극심한 공포 속에 서로를 탓하거나, 자존심 때문에 "조금만 버티면 우리가 고칠 수 있어"라며 허세를 부렸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비행사들은 가장 치명적인 실패 사실을 지상 관제 센터에 즉각적이고 투명하게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지구의 관제탑은 '왜 그따위 실수를 했냐'고 다그치는 대신, 수백 명의 전문가를 총동원해 대원들과 함께 고장 난 캡슐의 해결책을 밤새워 짜맞췄습니다. 절망적인 무게를 어깨에 나눠 메었던 완벽한 '보고와 상담'이 기적을 만든 것입니다.

완벽한 보고 체계는 '심리적 무장해제'에서 옵니다.
【여긴 한국입니다만?】
아폴로 13호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끄덕이며 감동하지만, 막상 우리 삶의 현장인 오피스로 돌아오면 어떨까요. 최근 제가 목격했던 한 다국적 기업의 사례를 떠올려 봅니다.
해외 본사에서 한국 지사로 부임한 외국인 주재원 리더가 있었습니다. 그는 로컬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실무진들을 회의실로 불러 모아 다그쳤습니다. "본사의 이 훌륭한 시스템이 있는데, 대체 왜 이런 것도 현장에서 안 돌아가게 둡니까? 역량의 문제입니까?"
실무자들의 역린을 건드린, 명백히 '누구의 책임인가'를 묻는 통제와 질책의 언어였습니다. 심장이 졸아붙은 한국인 직원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여긴 한국입니다. 본사가 한국 시장 상황을 너무 모르시는군요."라며 두꺼운 방어막을 쳤습니다. 문제를 맞대고 풀기는커녕, 리더와 실무자가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며 반목하기 시작한 겁니다.
우주선 안에서 불조심을 안 한 네 잘못인지 내 잘못인지 멱살을 잡고 싸우는 꼴이었습니다. 결국 그날의 회의는 분노와 서운함만 남기고 끝이 났고, 경영진이 의도했던 비즈니스의 돌파구는 현장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채 차갑게 식어버렸습니다.

【질책하는 통제와 외면하는 방임 사이】
외국인 주재원과 한국 직원들 사이에는 무엇이 빠져 있었을까요. 단연코 실력 부족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겐 내가 이 결함을 공유해도 비난받지 않고 다 함께 해결책에 매달릴 것이란 보장, 에이미 에드먼슨 하버드 교수가 말한 진짜배기 '심리적 안전감'이 없었던 것입니다.
조직에 마이크로매니징 같은 '촘촘한 통제'만 가득하다면 직원들은 숨 막혀 실수조차 숨깁니다. 반대로 "알아서 하세요"라며 결과만 묻는 '싸늘한 방임'의 팀이라면, 실무자는 실패의 고립감 때문에 혼자 발버둥 치다 우주선 밖으로 튕겨져 나가는 퇴사를 택하고 맙니다.

핵심 문장
"심리적 안전감은 목표나 책임을 깎아주는 값싸고 좋은 게 좋은 온정주의가 아닙니다. 온전한 목표치를 요구하되, 문제가 생겼을 땐 비난 없이 시스템 자원을 쏟아붓는 가장 가혹하면서도 든든한 '관제탑' 역할을 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를 살피는, 우리를 살리는 질문들】
전편에서 나쁜 관행의 본질인 '펌프 손잡이'를 뽑아버렸다면, 우리는 그 진공을 건강한 룰로 재빨리 채워야만 합니다. 방금 전 다국적 기업의 실패 사례로 돌아가, 만약 그 주재원이 이렇게 물어봤다면 "여긴 한국입니다"라는 날카로운 가시가 튀어나왔을까요?
"왜 이런 것도 못합니까?" 가 아니라,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금 회사와 제가 먼저 길에서 치워드려야 할 현장의 장애물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봤다면 어땠을까요. 이는 상대를 질책의 대상(Who)이 아니라, 함께 문제를 풀어나갈 시스템(What)의 맹점으로 바라보는 성숙한 리더의 화법입니다.
장애가 터졌을 때 "누가 결재 올렸어?"라며 색출하는 대신, "아니 우리 회사의 시스템이 어떻게 짜여 있길래 이런 기본적인 실수를 못 거르고 고객에게 전달됐지?"라며 모두가 머리를 맞대는 문화.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휴스턴 관제탑, 일명 무비난 장애 부검 문화입니다.
【안전벨트가 괴물을 낳을 때】
하지만 아폴로 13호의 아름다운 교훈만 믿고 무작정 완벽한 안전망과 지원 제도를 팀에 선물했을 때, 우리는 곧장 이상한 역풍을 맞이합니다.
1975년, 시카고 대학교 샘 펠츠만(Sam Peltzman)은 안전벨트 의무화 법안 이후 오히려 교통사고와 보행자 사망률이 크게 늘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습니다. 놀랍게도 운전자들이 그 '안전벨트'의 튼튼함을 믿고, 예전보다 훨씬 무책임하고 난폭하게 운전했기 때문입니다. 위험 보상 심리, 즉 '펠츠만 효과'입니다.
심리적 안전감을 겹겹이 쳐두면 누군가는 무책임하게 일을 던지면서 "우린 시스템 탓만 하면 되잖아요"라고 말하거나, 자율적인 수평 문화를 내세워 껄끄러운 오너십과 결정은 모두 남에게 떠넘기는 프리라이더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마음이 참 씁쓸해지지요.
이따금 자율과 수평 문화라는 명분을 걸고 우리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가장 곤란했던 안전벨트 부작용(펠츠만 효과)은 어떤 모습이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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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세빈 · 조직문화의 브릿지 · EDGE6기 데이터·전략·HRD/OD를 연결하는 실무자 LinkedIn |  |
Houston's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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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970년 4월, 달을 향해 날아가던 아폴로 13호의 산소 탱크가 우주 한복판에서 굉음과 함께 터졌습니다. 전력은 끊기고 산소는 급격히 바닥을 위협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죠. 보통 사람이라면 극심한 공포 속에 서로를 탓하거나, 자존심 때문에 "조금만 버티면 우리가 고칠 수 있어"라며 허세를 부렸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비행사들은 가장 치명적인 실패 사실을 지상 관제 센터에 즉각적이고 투명하게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지구의 관제탑은 '왜 그따위 실수를 했냐'고 다그치는 대신, 수백 명의 전문가를 총동원해 대원들과 함께 고장 난 캡슐의 해결책을 밤새워 짜맞췄습니다. 절망적인 무게를 어깨에 나눠 메었던 완벽한 '보고와 상담'이 기적을 만든 것입니다.
아폴로 13호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끄덕이며 감동하지만, 막상 우리 삶의 현장인 오피스로 돌아오면 어떨까요. 최근 제가 목격했던 한 다국적 기업의 사례를 떠올려 봅니다.
해외 본사에서 한국 지사로 부임한 외국인 주재원 리더가 있었습니다. 그는 로컬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실무진들을 회의실로 불러 모아 다그쳤습니다. "본사의 이 훌륭한 시스템이 있는데, 대체 왜 이런 것도 현장에서 안 돌아가게 둡니까? 역량의 문제입니까?"
실무자들의 역린을 건드린, 명백히 '누구의 책임인가'를 묻는 통제와 질책의 언어였습니다. 심장이 졸아붙은 한국인 직원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여긴 한국입니다. 본사가 한국 시장 상황을 너무 모르시는군요."라며 두꺼운 방어막을 쳤습니다. 문제를 맞대고 풀기는커녕, 리더와 실무자가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며 반목하기 시작한 겁니다.
우주선 안에서 불조심을 안 한 네 잘못인지 내 잘못인지 멱살을 잡고 싸우는 꼴이었습니다. 결국 그날의 회의는 분노와 서운함만 남기고 끝이 났고, 경영진이 의도했던 비즈니스의 돌파구는 현장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채 차갑게 식어버렸습니다.
외국인 주재원과 한국 직원들 사이에는 무엇이 빠져 있었을까요. 단연코 실력 부족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겐 내가 이 결함을 공유해도 비난받지 않고 다 함께 해결책에 매달릴 것이란 보장, 에이미 에드먼슨 하버드 교수가 말한 진짜배기 '심리적 안전감'이 없었던 것입니다.
조직에 마이크로매니징 같은 '촘촘한 통제'만 가득하다면 직원들은 숨 막혀 실수조차 숨깁니다. 반대로 "알아서 하세요"라며 결과만 묻는 '싸늘한 방임'의 팀이라면, 실무자는 실패의 고립감 때문에 혼자 발버둥 치다 우주선 밖으로 튕겨져 나가는 퇴사를 택하고 맙니다.
전편에서 나쁜 관행의 본질인 '펌프 손잡이'를 뽑아버렸다면, 우리는 그 진공을 건강한 룰로 재빨리 채워야만 합니다. 방금 전 다국적 기업의 실패 사례로 돌아가, 만약 그 주재원이 이렇게 물어봤다면 "여긴 한국입니다"라는 날카로운 가시가 튀어나왔을까요?
"왜 이런 것도 못합니까?" 가 아니라,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금 회사와 제가 먼저 길에서 치워드려야 할 현장의 장애물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봤다면 어땠을까요. 이는 상대를 질책의 대상(Who)이 아니라, 함께 문제를 풀어나갈 시스템(What)의 맹점으로 바라보는 성숙한 리더의 화법입니다.
장애가 터졌을 때 "누가 결재 올렸어?"라며 색출하는 대신, "아니 우리 회사의 시스템이 어떻게 짜여 있길래 이런 기본적인 실수를 못 거르고 고객에게 전달됐지?"라며 모두가 머리를 맞대는 문화.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휴스턴 관제탑, 일명 무비난 장애 부검 문화입니다.
하지만 아폴로 13호의 아름다운 교훈만 믿고 무작정 완벽한 안전망과 지원 제도를 팀에 선물했을 때, 우리는 곧장 이상한 역풍을 맞이합니다.
1975년, 시카고 대학교 샘 펠츠만(Sam Peltzman)은 안전벨트 의무화 법안 이후 오히려 교통사고와 보행자 사망률이 크게 늘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습니다. 놀랍게도 운전자들이 그 '안전벨트'의 튼튼함을 믿고, 예전보다 훨씬 무책임하고 난폭하게 운전했기 때문입니다. 위험 보상 심리, 즉 '펠츠만 효과'입니다.
심리적 안전감을 겹겹이 쳐두면 누군가는 무책임하게 일을 던지면서 "우린 시스템 탓만 하면 되잖아요"라고 말하거나, 자율적인 수평 문화를 내세워 껄끄러운 오너십과 결정은 모두 남에게 떠넘기는 프리라이더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마음이 참 씁쓸해지지요.
가장 곤란했던 안전벨트 부작용(펠츠만 효과)은 어떤 모습이던가요?
작성자
김세빈 · 조직문화의 브릿지 · EDGE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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